Archive for November, 2015

November 12, 2015: 12:13 pm: bluemosesErudition

묻지 말아야 할 말은 묻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군대의 규율을 철저히 따르던 우다왕에게 예기치 않은 시련이 닥치는데, 바로 장기출장을 떠난 사단장의 빈자리를 틈타 그의 젊은 아내 류롄이 그를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어느 부대. 사단 전체를 통솔하는 수장은 자신의 성 불능을 감추고 이혼 후 젊은 간호사 출신의 류롄을 만나 재혼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순조롭지 못하다. 그때 상부에서 내린 모종의 지시로 사단장의 집에 파견되어 취사와 청소를 담당하게 된 우다왕은, 뜻하지 않게 마오쩌뚱의 혁명 언어 ‘인민을 위해 봉사하라’는 명제를 타락의 동력으로 자신에게 성과 애정의 봉사를 해줄 것을 강요하는 사단장의 아내 류롄을 맞닥뜨리게 된다. 처음에 우다왕은 그녀의 요구를 거부지만, 승진의 문턱에서 사단장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결국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아이를 호강시켜주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류롄과 애정행각을 벌이면서 우다왕은 점차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욕망에 눈뜨게 되고, 육체적 사랑이 깊어질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새로운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내 말뜻은 매일 씻느냐는 거야.” “매일 씻습니다.” “그럼 가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 팻말이 식탁 위에 없으면 내가 시킬 일이 있으니 위층으로 올라오라는 뜻이라는 걸 잊지 마.” 우다왕은 도망치듯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주방의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푸푸 소리를 내면서 얼굴 가득한 땀을 씻어냈다.(p.40)

그녀가 식당 입구에서 식탁 위에 놓인 나무팻말을 힐끗 쳐다보고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우다왕이 입고 있던 땀투성이 군복을 벗어 건네며 말했다. “이봐요, 이 옷 좀 빨아줘요.” 그녀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한참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가 물었다. “뭐라고?” 그가 다시 말했다. “더워 죽겠어요. 가서 내 옷 좀 빨아달라고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어투와 동작, 태도는 휴가 때 집에 돌아가 보리를 벨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p.140)

파격적이고 시적인 성애묘사로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이 작품이 당국으로부터 금서 조치까지 받은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마오쩌둥이라는 신과 같은 존재가 내세운 혁명의 언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의 언어로 전락시킴으로써, 그의 혁명 전통을 희화화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과잉 탄압은 독자들의 오히려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작품은 중화권은 물론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읽어야 할 문제작이 되었다.

: 11:49 am: bluemosesErudition

나쓰메에게 평화의 전쟁은 화혼양재를 위한 자기본위의 여정이었다.

: 10:35 am: bluemosesErudition

“나쓰메가 주창한 ‘자기본위’의 사상은 이윽고 제국주의적 사고의 침윤으로 이어졌고, 이는 나쓰메 문명 비평에 중대한 오점을 남겼다. 나쓰메가 천황제나 제국주의에 반대했다는 기존의 평가는 재검토되어야 하며, 여전히 잔존하는 나쓰메 옹호기제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메이지 시대 지식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쓰메 역시 메이지 내셔널리즘의 시류에서 부유하는 체제 내 지식인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윤상인)

November 11, 2015: 1:13 pm: bluemosesErudition

1 Corinthians 6:9-10 ESV

Or do you not know that the unrighteous will not inherit the kingdom of God? Do not be deceived: neither the sexually immoral, nor idolaters, nor adulterers, nor men who practice homosexuality, nor thieves, nor the greedy, nor drunkards, nor revilers, nor swindlers will inherit the kingdom of God.

: 12:13 pm: bluemosesErudition

나쓰메 소세키가 자신이 도쿄제국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지망하게 된 동기에 대해 “외국어(영어)로 훌륭한 문학 저술을 내서 서양인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고 발언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오이쓰키, 오이코세(追い付き, 追い越せ)”, 즉 서양을 배워 서양을 극복하자는 것은 후쿠자와 유키치 등 메이지 시대 문명개화론자들의 공통 구호였다. 적어도 나쓰메 스스로의 증언에 의하면 그가 학문으로서의 영문학에 입문할 때에도, 그리고 영문학 교수에서 작가로 전신(轉身)할 때에도 그의 발심을 불러일으킨 최대 동인은 서양에 대한 대항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쓰메는 러일 전쟁 후 발표한 평론 「전후 문학계의 추세」(1905. 8.)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과의 사이에 포탄이 오가는 전쟁은 없었지만 ‘물질적, 정신적인 면에서의 평화의 전쟁’은 늘 있어 왔다고 적었다. 서양으로부터 수입한 근대 문명을 통해 나라의 독립을 지킬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서 서양에 의한 정신적인 ‘침식’을 감수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일본은 ‘평화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쓰메가 서양에 대한 정신적 독립이라는 명제와 마주한 것은 이보다 4~5년 전인 영국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런던 유학 중 서양 문명에 대한 대결 의식을 심화하던 나쓰메는 하숙집에 틀어박혀 독서와 집필에 매달렸다. 영국 등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문학 연구는 “피로 피를 씻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 그가 도달한 방향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문학론이었다. 그러나 후일 나쓰메 스스로도 이 글을 “기형아의 송장”이라고 인정했듯이, 그의 ‘정신적 독립’을 향한 시도는 영문학 연구를 통해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학문이든, 창작이든 나쓰메에게는 ‘평화의 전쟁’의 일환이었고, 그는 비로소 자국어를 통한 창작을 통해 서양에 대한 정신적 자립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나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스스로 맹서했네. 무슨 일이 있어도 10년 전과 같은 삶은 반복하지 않겠노라고. 지금까지는 나 스스로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다네. 스스로를 신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네. (……) 단지 엄청나게 격변하는 요즈음 세상에서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만큼 나의 감화를 받고, 내가 얼마만큼 사회적 존재가 되어 다음 세대 청년들의 살과 피가 되어 존속할 수 있을지 부딪쳐 보고 싶다네. (……) 나는 혼자 힘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서, 막다른 곳에서 쓰러지려고 하네.” 여기서 나쓰메 소세키의 비장한 출사표에 예술과 정치가 모순 없이 공존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일본 근대문학의 효시, 개인의 마음과 일본의 정신, 서정 속 사회, 예술의 정치화와 정치의 심미화, 일제 국민문학의 모본

: 1:33 am: bluemosesErudition

Psalm 127:1-2 ESV

Unless the Lord builds the house, those who build it labor in vain. Unless the Lord watches over the city, the watchman stays awake in vain. It is in vain that you rise up early and go late to rest, eating the bread of anxious toil; for he gives to his beloved sleep.

November 10, 2015: 1:18 pm: bluemosesErudition

어떤 작품이 국민적 텍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는 자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제시하고 외적으로는 자국의 정신문화적 가치를 과시할 수 있는 것이 요구된다. 메이지 시대 이후, 무사도 윤리에 통하는 정신주의는 국민 도덕의 근간이 되었다. 가라사와 토미타로(唐沢富太郎)의 『교과서의 역사』에 의하면, 『심상소학독본(尋常小学読本)』의 편찬 방침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은 서양 문명에 대한 일본 문화나 정신의 우월성 주장”이다. 곧 “서양의 물질문명에 대한 일본 정신문화의 우위”를 나타내는 것에 주안을 둔 것이다.

『마음』이라는 텍스트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는 ‘개인의 마음’과 메이지 시대를 살아온 ‘신민의 마음’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의 ‘마음’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중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 메이지의 종언과 함께 선생이 자살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어 왔는데, 그것은 이러한 중층성이 초래한 결과일 것이다. 이 중층성은 이 텍스트가 지닌 정치적 모호함의 근원을 이루기도 한다.

『마음』은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사용된 제2기 국정 『심상소학독본』은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郎)나 하가 야이치(芳賀矢一) 등이 편찬한 것인데 그 ‘편찬 취지서’를 보면 “충군애국의 정신을 갖고 쾌활 근면 충성으로 직무를 다해야 하는 국민의 견실한 기풍을 양성하는 것이 본서 편찬의 주안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후 교육 이념은 메이지 시대의 그것과는 달라졌지만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견실한’ 국민을 창출한다는 대전제는 변함이 없다. 국가와 국민을 상상하여 정신주의 윤리를 내세우는 『마음』도 여러 교육 현장에서 ‘견실한’ 국민을 양성하기 위한 수신서로서 꾸준히 읽혀 왔다.

‘정진’, ‘자활’, ‘맹진’, ‘금욕’, ‘도의’, ‘향상심’, 이들은 ‘선생의 유서’ 속에서 K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말인데 이것은 근대화 속에서 일본사회가 당대의 청년 및 청소년들에게 요구하던 정신 윤리의 덕목과도 일치한다. 또한 이러한 정신적 고결함을 지향하였던 것은 ‘선생’ 자신도 예외는 아니다. “대저 책의 이야기와 학문의 이야기, 미래의 사업과 포부와 수양을 화제로 해 온” 두 사람은 상승 지향의 기개로 고양되어 있던 메이지라는 시대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나쓰메의 자기 본위 사상이 전후 일본 국민의 이데올로기적 통합에 기여했을 것이라는 추측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나쓰메를 비롯한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은 일본/서양의 이원론적 구도에서 세계를 파악했다. 서양 문물의 압도적 영향 아래 놓인 근대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자기 본위를 주창했던 나쓰메에게 ‘서양’은 영국 등 서유럽을 의미했다. 그리고 패전과 함께 미국에 의한 점령 통치기를 거친 전후의 일본인에게 미국이 곧 ‘서양’이 되었다. 즉 전후에도 자기 본위는 일본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규범적 가치였고, 『마음』에 투영된 금욕적 정신주의는 국민적 도덕으로 결정(結晶)될 수 있었다. 친구의 자살에 대한 죄의식으로 번민하며 스스로 절대 고독의 감옥에 갇혀 살아오다 스스로의 윤리적 판단에 의해 극단적인 ‘자기 희생’의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 ‘선생’은 ‘고귀한 일본인’을 표상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바람직한’ 국민으로서의 품성을 함양하는 수신(修身) 교사이기도 한 것이다.

나쓰메는 천황의 사후 발표한 「메이지 천황 봉도사(明治天皇奉悼之辭)」에서 “과거 45년간에 발전한 가장 빛나는 우리 제국의 역사와 함께하신 잊을 수 없는 대행(大行) 천황께서 지난 30일 붕어하시다.”라고 적은 바 있다. 이러한 메이지 천황의 치세에 대한 나쓰메의 칭송을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비자발적으로 표명된 의례적 언설로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대다수 일본인 연구자들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나쓰메는 메이지 천황의 죽음을 계기로 신민(국민)으로서의 자각과 국가와 시대에 대한 귀속 의식을 보다 강화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근대 일본의 정신사를 논할 때, 서양화(구화)와 일본 회귀의 주기가 반복된다는 설명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일본 회귀 논리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은 아마도 ‘화혼양재’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화혼’ 즉 일본 정신의 구현은 일본 근대 문학에 부여된 중요한 과제였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소설 『마음』 속에서 극단적인 정신주의와 함께 표현된 개인의 ‘마음’은 언제든지 마음의 집합체로서의 ‘화혼’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실체로 치환될 수 있다.

_ 윤상인,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2015/10/24

: 1:15 pm: bluemosesErudition

1 Corinthians 6:15-20 ESV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ies are members of Christ? Shall I then take the members of Christ and make them members of a prostitute? Never! Or do you not know that he who is joined to a prostitute becomes one body with her? For, as it is written, “The two will become one flesh.” But he who is joined to the Lord becomes one spirit with him. Flee from sexual immorality. Every other sin a person commits is outside the body, but the sexually immoral person sins against his own body. Or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ithin you, whom you have from God? You are not your own, for you were bought with a price. So glorify God in your body.

: 1:11 pm: bluemosesErudition

1 Corinthians 6:7 ESV

To have lawsuits at all with one another is already a defeat for you. Why not rather suffer wrong? Why not rather be defrauded?

: 3:20 am: bluemosesErudition

“역사로서의 아시아도, 사상으로서의 아시아도, 하물며 단순한 공간으로서의 아시아도 하루키의 소설에는 결여되어 있다.”(윤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