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가 되기 전, 그는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IMF로 망해버린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이었던 그에게 아버지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족의 숨통을 조이는 짐승 같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은 기어이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낸다. 그로부터 4년 후,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그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4년 동안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대책이 없구나. 넌 불행해질 거야”라고 경고했음에도 왜 그는 안정된 조직을 벗어나 ‘길이 아닌 길’로 달려가야만 했을까?

아버지의 소원은 아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IMF로 여느 평범한 가정들이 숱하게 망해갈 때 김보통의 집안도 무너졌다. 유일한 희망은 장남이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집안을 살려내는 것뿐이었다. 대기업 회사 배지를 옷깃에 달게 되었을 때, 김보통은 생각한다. ‘끝이다. 고생도, 가난도, 이 지긋지긋한 짐승의 삶도 끝이다. 이제 나는 사람이 된다. 드디어 나는 사람이 된다.’ 그러나 입사 후 회사생활을 하던 그에게 이상한 증상이 생긴다.

“그 무렵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당시 아파트 13층에 살고 있었는데,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 난간 너머를 내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쯤에서 떨어지면 한 방에 죽겠는데.’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는 ‘많이 피곤한가보다’ 싶어 의식적으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자동차들이 빠르게 지나치는 도로의 신호등 앞에서, 지하철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플랫폼에서, 눈앞이 하얘질 때까지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이거면 확실히 죽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저 ‘확실히 죽을 수 있겠다’ 싶은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죽음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마치 죽기를 바라는 사람처럼.”(45~46쪽)

확실하게 돈은 벌지만, 분명하게 불행하다고 느끼는 삶. 회사원 김보통에게는 죽음을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회사생활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했다. 정해진 출근시간은 아침 9시인데 오전회의가 새벽 6시 50분에 열렸다. 회의는 부장의 긴 모노드라마에 가까웠다. 일과시간 내내 회의를 해놓고는 저녁에 회식을 소집했다. 회식은 자정이 되고 새벽이 되도록 끝나지 않았다. 방금 전에 퇴근했는데 다시 출근해야 하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게다가 그토록 아들이 대기업에 가길 소원했던 보통의 아버지는, 말기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기업 다니는 아들은 아픈 아버지를 보러 갈 시간조차 없었다. 퇴근시간마다 회식을 소집하는 상사는 장군처럼 외쳤다. “본인 사망 외에는 열외 없다!” 일하려고 입사했는데, 제발 일만 했으면 좋겠는데, 회사는 삶마저 송두리째 요구했다.

이 잔을 비우고, 저 잔을 받고, 건배를 해서 이 술을 모두 없애면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러 갈 수 있을까. (…) 뚝, 하고 눈물이 흘렀다. 이 좋은 날, 남들처럼 웃지는 못할망정 울고 있었다. “야, 너 왜 울어.” 상무가 물었다. 차장이 나를 노려보았다. “세상 모든 아빠는 다 죽어. 우리 아빠도 죽었어.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아야지. 씨발새끼야.”(214쪽)

퇴사를 결심한 그에게 무수한 조언들이 쏟아진다. “회사라는 게 말이야. 안에서는 그 고마움을, 든든함을 잘 몰라. 나가보면 알게 되는 거야. 이 시스템이 지금까지 얼마나 나를 보이지 않게 보호해주고 있었는지를. 이 견고한 시스템을 벗어난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재밌는 게 뭔 줄 아냐? 다들 후회해. 나가보면 아무것도 없거든. 나를 백업해줄 조직도, 내가 내세울 간판도. 현실이란 게 생각보다 훨씬 가혹해.” 그는 선배에게 말한다. “그냥 도망치는 거예요. 도망치는 거라고요. 잘되고 말고는 상관없어요!”

“수족관에서 살다 바다로 나오니 어때? 죽겠지?” 나는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매우 비굴한 웃음이었을 것이다. “끝이 어딘지도 모르게 넓고, 바닥이 어디까진지 모르게 깊고, 파도는 계속 몰아쳐오고, 물은 짜고, 시퍼런 바닷물 속엔 상어에 고래에 뭐에 득실득실하고. 바다,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지? 죽겠지?” “그래. 죽겠네.” “돌아가.” 친구는 다시 말했다. “바다는 네가 살 곳이 아니야.” 나는 우물거리며 “안 돼” 하고 말했다. “전화해. 인사과 사람이든 뭐든 전화해서 죄송하다고 빌어. 내가 잠깐 미쳤나보다고. 한 번만 물러달라고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져.” “못해. 이제 다 끝났어.” “그럼 죽어.”(140~141쪽)

“탕수육 소자에 짜장면 하나요.” 우선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그래야 바닥에 내팽개쳐진 내 존엄을 다시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면 된다. 어설프게 장사니 사업이니 해보지도 않은 일에 돈을 쓰는 건 그만하고, 다시는 대학원이니 뭐니 원치도 않으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기웃거리지도 말자. 그저 내가 있는 곳에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오래간만에 먹는 탕수육 맛은 끝내줬다.(173~175쪽)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을 시작해보겠다는 이 작은 생각의 전환은, 골방에서 시들어가던 김보통의 삶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상한 식빵 같은 위축된 실업자로서의 삶을 내버리고, 자신에게 밥보다 중요한 달콤한 즐거움과 자존감을 선물하기 위해 브라우니를 구우면서 사람 구경을 한다. 온라인 세상에서 재잘재잘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는 흥미로운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림을 그린다. 김보통의 메일함에는 자신의 얼굴도 그려달라는 메일이 쇄도한다. 그는 하루종일 손이 저려올 때까지 우리 주변에서 울고 웃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그림을 그렸다.

“나의 대수롭지 않은 그림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죽음의 문턱 혹은 회복의 입구에서, 탄생의 순간부터 이별의 아픔까지, 망각하지 않기 위해 또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내 보잘것없는 그림을 기다리는 분들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지만, 분명 있기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머물지 못해 떠나버리는 분들이, 기억되지 못한 채 잊혀갈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여유 부리지도 못했습니다.”(246쪽)

“딱 한 번인. 생이면서, 딱 한 번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했다. 그것이 내 예명이 ‘김보통’이 된 이유다.”(274~275쪽)

“4년 전 회사를 떠나며 생긴 버릇 중 하나는 매일같이 ‘지금 나는 불행한가?’에 대해 자문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망하고 있는 과정중에 있는 것일지 모르고, 그래서 언젠가 결국 불행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나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늘 당장 싫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매일매일 불행에서 도망치는 것이 내겐 더 중요한 일이다. 나는 그저 한 마리 크릴새우가 해류를 따라 흘러가듯 거대한 혼란 속에서 흐르고 또 흐를 뿐이다. 고래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바다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새우로서 살아간다. 싫은 것들을 피하며 가능한 한 즐겁게. 운이 좋다면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행복할 수 있겠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불행하지만 않으면 된다. 다행히 아직도 불행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