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6th, 2011

January 26, 2011: 3:13 pm: bluemosesErudition

0. Freud, S., 김석희 역, <문명 속의 불만>, 1929[2003], 285~295쪽.

1. 키르케고르는 <사랑의 역사役事 Works of Love>의 위대한 장 제2부 C,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에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상적인 이웃은 죽은 자라는 주장을 전개한다. 유일하게 훌륭한 이웃은 죽은 이웃이라는 것이다. …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평등을 의미한다.” “그 모든 차이를 버리면 네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오직 죽음 속에서 뿐이다. “죽음은 모든 차이를 제거한다. 그러나 편애는 언제나 차이들과 관계가 있다.”(Reinhard, K. et al., 2005[2010]: 10)

2. “이웃의 정치신학은 보편적인 것이 차이의 상황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보편적인 “것의 조건은 차이의 축소 속에서가 아니라, 그것들 속의 특이하게 보편적인 것을 결정함으로써, 보편성의 가능성을 표상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정의는 차이를 동등화하는 기능이 아니며, 오히려 동일성의 조건과 다른 것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승화에 의존한다.”(Reinhard, K. et al., 2005[2010]: 117)

3. 클로드 르포르,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야니타 스카브라카키스 등의 급진 민주주의자들에 따르면, “대타자는 없다”는 라캉의 테제는 “사회-상징적 질서는 일관되지 않으며 그것을 보증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민주주의는 이런 궁극적 근거의 결여를 권력 체제로 통합하는 방법”이다. “조화로운 사회적 총체라는 유기체적 관점이 환상에 의존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환상을 가로질러 모순 없는 사회라는 불가능한 이상을 부정하는 정치적 입장을 제공한다.”

* Kierkegaard, Søren Aabye를 ‘키에르케고르’가 아닌 ‘키르케고르’로 표기한다. 각설하고, 키르케고르는 이전에 그랬듯 예기치 않게 부각된다.

: 3:10 pm: bluemosesErudition

어디선가 프로이트는, 성숙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역량의 증대’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