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15th, 2011

January 15, 2011: 9:57 pm: bluemosesErudition

연극은 일상의 혼란을 극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생의 본질과 즉자대자적으로 소통하게 하는 육화된 희곡이다. 은송림은 연극의 3요소를 무대, 배우, 관객이 아닌 배우(무대)와 관객(객석)과 양자의 공명(극장)으로 규정한다. 무대와 객석의 합일은 [인지정서심동의 변혁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전 인격의 성화를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교육과 합치된다.

* 가장 이상적인 교육은 가장 이상적인 연극이며, 역도 성립한다. 그런데 과연, 연극과 교육의 연합은 ‘치유’를 산출하는가. 치유란 무엇인가. “치유라는 건 우리 삶의 조화가 깨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나 심리적 고통을 위무하는 게 아닙니다. 그 깨진 조화를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는 거죠, 치유라고 하면 조용하고 온화한 표정만 떠올리는데요, 그건 상품으로서의 치유죠. 진정한 치유는 [죄죽임을 동반하는] 매우 격렬한 과정입니다. 내 안의 것들을 모조리 뒤집어 바로잡는 거니까요.”(지승호/김규항, 2010: 217)

: 9:21 pm: bluemosesErudition

접촉을 삼간다.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한다.

: 7:26 pm: bluemosesErudition

지식채널 e _ 20~30대 청년들의 야유회나 역할극에 침륜한 우리시대의 감성 교양방송.

: 3:58 am: bluemosesErudition

어디선가 보았던 글귀가 아른거린다. 장석주의 것으로 기억된다. 복잡다단한 현실을 기술하는 것과 현실을 번잡스럽게 기술하는 것은 다르다. “이 책(아케이드 프로젝트)에는 체계나 정교한 서사구조가 없다. 소비와 사치의 천국, 자본주의 제국의 핵심 수도, 그 파리에 대한 관상학적 독해를 보여 주는 자료들과 벤야민 자신의 단상들이 그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파편화된 형식의 나열이 언뜻 보여 주는 것은 혼란이다. 그러나 혼란을 보여 주는 것과 혼란스럽게 보여 주는 것은 다르다. 벤야민은 환등상(phantasmagorie)의 미망으로 덧씌워진 파리의 혼란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3:32 am: bluemosesErudition

1.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 운운하며 도구적 이성의 자기 파괴적 속성을 음울하게 설파했지만, 결국 문제의 원인을 ‘근대’의 속성으로 돌림으로써 납득할 수 없는 현상을 제 편의대로 소화시켜 버리는 접근법은 사변적 내복약에 불과했다(Horkheimer & Adorno, 2001). 반면 모스와 벤야민은 감성에 초점을 맞춰 정치와 예술을 매개한 대중선동의 심리학을 중계했으나, “대중의 국민화”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지닌 미학적 기능에서 파시즘의 근간을 찾음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국민이나 기술 같은 ‘근대’의 산물에 밀어 넣어 버렸다(Mosse, 1975; Benjamin, 2003). 이성과 감성에 호소한 전자와 후자는 각각 대중의 의식과 무의식에 국한지어 단편적으로 파시즘을 해명함으로써 … ‘계급을 배반한 존재’라는 역설적 현상을 너무나 당연하고 일반적인 근대의 현상으로 변색시켜 버렸다.

2. 혼란을 혼란스럽게 보여주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사회적 토대와 정치문화적 구조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접합점이 요청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파시즘 분석의 단초를 제대로 마련한 것은 그람시였다.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을 결성하고 반파시즘 운동을 전개하다 수감된 그람시는 점증하는 위기 상황에서 번져가는 사회적 불만과 그에 따른 반대세력의 규합을 오히려 역이용하여, 상대편에게 질서 동요의 책임을 전가하는 가운데 보수적 안정 쪽으로 대중을 잡아끄는 상식(common sense)에 주의를 기울였다.

3. 그람시에게 상식은 단순히 머리와 가슴을 사로잡는 마음과 생각이 아니라 몸의 자유와 제약 속에서 규정된 [당연한] 의지였다. ‘길이 막혔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런’ 대중의 상식은 구조적으로 각인된 일반적 선택이었으며, 이러한 자기 규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강압에 명분을 실어주는 지적ㆍ도덕적 지배력이 겸비되어야만 했다. 그람시는 강제와 동의, 물리력과 이데올로기가 융합된 ‘동의된 강제’ 내지 ‘물화된 이데올로기’를 헤게모니(hegemony)라 불렀고 헤게모니에 의한 대중의 지도(leading)를 파시즘의 본질로 파악했다.

4. 그람시는 당파성이 부재한 중립적인 대중을 전제하고 그들의 추동 원리를 고안한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이념을 지배이념으로 침투시킴으로써 대중이 계급적 자의식을 상실하게 되는 과정을 고찰하였던 것이다. 이에 그람시는 정치경제적 권력과 사회문화적 자본의 융합점이자 헤게모니 구축의 관건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블록(historic bloc)의 형성에 파시즘 분석의 초점을 맞추었다.

5. 그람시에 따르면, 역사적 블록은 [과거와 미래의 접점인] 현재의 사회질서와 발전형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선별된 전통으로서, 공간적으로 복합적인 관계의 총체일 뿐 아니라 시간적으로는 장기적인 연속성을 요구한다. 이로 인해 역사적 블록을 변혁하려는 투쟁은 단시일에 ‘전방의 참호’를 제압하는 기동전(war of maneuver)이 아니라 장기간에 ‘후방의 포대’를 포섭하는 진지전(war of position)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역사적 블록의 조정을 통해 헤게모니를 (재)구축하는 일련의 과정은 반드시 진지전의 형태를 갖게 되는데, 그람시에 의하면 이러한 진지전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파시즘이었다(Gramsci, 1999: 155~156).

6. 파시즘에 대항해 시민사회의 변혁적 실천을 도모했던 그람시의 1차적 관심은 대중을 교육함으로써 또 다른 혁명의 기운을 끌어내어 새로운 민주 질서를 건설하는 진지전의 수행에 있었다. 이에 그람시는 마키아벨리를 좇아 대중의 집단적 의지를 규합하여 이끄는 교육의 주체를 “현대의 군주”로 명명하고,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를 포괄하는 그 총체적 리더십과 자신의 혁명 전략을 일치시킨다. 우파 혁명을 가능케 했던 파시즘으로부터 그람시가 도출한 교훈은 다름 아닌 [교육에 근간한] 리더십의 중요성이었던 것이다.

7. 그러나 그람시의 기여는 리더십의 중요성 발견에 머문다. 그람시의 맹점이자 한계는 파시즘이 어떻게 대중의 심성에 내면화 되었는가?’라는 결정적 질문의 결여에 있다. 다시 말해, 리더십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만 강변할 뿐 정작 대중의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고찰은 누락되어 있다. 이로 인해 그람시의 파시즘 분석은 “사회 현상의 교육학적 탐구”를 간과한 채 “교육 현상의 사회학적 이해”에만 머물러, 파시즘이 어떻게 형성되고 또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알려주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