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2013

November 20, 2013: 11:48 am: bluemosesErudition

균형

: 11:46 am: bluemosesErudition

“나는 2007년께부터 시장경제, 공공경제(정부), 그리고 사회적 경제(공동체 또는 시민사회)가 박자를 맞춰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세 박자 경제론), 이 얘기를 국제 선언문에 넣을 만큼 용감하지 않았다. 그런데 캐나다의 칼 폴라니 연구소(소장 마거릿 멘델)가 초안에 대한 코멘트에서 ‘다원적 경제(plural economy)’를 명시하자고 제안했다. 불감청 고소원!”(정태인)

November 19, 2013: 9:16 pm: bluemosesErudition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수능 100%의 정시의 확대를 환영하는 고교현장의 분위기다. 특목/자사고는 상대적으로 수능 고득점에 유리한 자원의 유리함에 주목하고, 일반고는 손 대기 어려운 논구술 없이 수능만으로 서울대 진학길이 열렸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당장 고교일선이 서울대의 정시확대와 논구술폐지에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언론조명이 등장한 상황이다. 정시의 비중 확대와 함께 수능 100% 반영의 취지는 논구술 등 대학별고사에 대한 사교육비 부담과 공교육 현장의 부담을 상쇄시킬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공교육 현장은 예전의 수능 중심 체제로 굳어질 위험이 크다. 정시 확대, 수능 100% 반영의 충격이 상당한 탓에 입학사정관 전형과 논구술고사 준비로 탄력적이었던 공교육 현장이 일제히 수능 학습으로 인한 암기 교육으로 전락할 수 있다. 서울대의 수시 전형이 여전히 75% 가량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일단 눈 앞에 보이는 쉬운 길을 찾기 위해 정시를 향한 수능 유형 암기에 집중할 것이란 우려다.”(김경숙)

: 1:27 am: bluemosesErudition

“박노자는 <나는 폭력의 세기를 고발한다>(인물과사상사)에서 ‘유교 윤리의 지배 시대가 파산에 이르게 된 분기점은 과연 언제였을까?’라고 물은 뒤, ‘[갑오개혁(1894)이 시작된 해부터 아관파천(1896)이 벌어진] 채 2년도 안 된 그 기간을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본다’라고 썼다. … 아관파천이 일어난 다음 해인 1897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토지>는 신소설의 특징인 공동체의 분해와 범죄자의 음모가 줄기를 이루며 주요 인물 가운데 악질 친일파도 빠지지 않는다.”

* 1895년 을미사변 당시 이완용은 친러파였다. 강자를 따르는 것이 해법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조선인은 근대인이 되었다.

November 18, 2013: 3:36 am: bluemosesErudition

성찰의 실종, 수준의 격하, 대안의 부재

: 3:34 am: bluemosesErudition

1. “반이명박 운동으로서 진보는 대략 세 단계로 무너졌다. 첫째, ‘이명박이 왜 당선되었는가’를 화두로 하는 사회적 성찰이 사라졌다.(누구든 이명박만 욕하면 손쉽게 정의와 진보의 지위를 확보 하는데 왜 성찰이 필요한가.) 둘째, 모든 사회 문제, 심지어 이전 자유주의 정권에서 그대로 이어져온 문제까지도 이명박 탓이 되면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분석이 사라졌다. 또한 모든 토론과 담론이 이명박 욕하기로 귀결하면서 모든 토론과 담론은 이명박 수준으로 하향평준화했다.(고작 이명박 따위를 욕하는 데 무슨 진지한 토론과 담론이 필요한가.) 셋째, 그런 당연한 귀결로 진보의 다양하고 진지한 대안과 전망들이 사라졌다.(‘닥치고 정권교체’외엔 다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소리로 치부되었으니.)”

2. “그런 진보가 선거에서 이기긴 어려웠다. 진보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에 투표한 대중에게 실망을 토로했지만 관점을 바꾸어, 대중은 왜 진보에 투표해야 했을까. 자신들의 10년 집권 역시 실망스럽긴 매한가지였던, 아무런 반성도 없이 오로지 이명박에 대한 대중의 반감만 이용하여 도덕적 우위와 희망을 말하는, ‘이명박 욕하기’를 ‘박근혜 욕하기’로 바꾸는 것 말곤 달라진 것도 전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대중은 왜 투표했어야 할까. ‘이명박도 싫고 이명박 욕만 하는 놈들도 싫은’ 대중의 남은 선택지는 무엇이었을까.”

3. “결국 오늘 진보에 남은 건 한 개의 앙상한 구호뿐이다. ‘최소한의 상식.’ 최소한의 상식이 위협받을 때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는 건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상식을 말한다는 건 최소한의 상식부터 회복하자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것 말곤 내세 울 게 없다는 말일 수도 있다. 오늘 진보는 최소한의 상식부터 회복하자고 말하지만 실은 그것 말곤 내세울 게 없다. 그런 진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적이 최소한의 상식을 파괴해주기만 기다리는 것이다. 진보는 지배체제가 바라는 ‘민주화 이후 진보의 이상적인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다.”

_ 김규항, “싸움인가 기생인가“, 「혁명은 안단테로」(경향신문, 2013. 11. 12)

: 2:54 am: bluemosesErudition

“비결정성은 없다. 자유는 Selbstbestimmung, 自己決定이다. 스스로에게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自然 즉 자기 스스로 그러한 것과 다르다. 자유가 없고 자연만 있으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자연일 뿐이다. 그러면 문화가 없다. 자연과 자유는 전혀 다르다. 스피노자는 이 우주 전체가 필연이요 동시에 자유라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바깥에서 우주로 하여금 강압한 바 없다. 우주 전체가 있을 뿐이다. 마음을 늘려서 우주와 합치시키면 그것이 필연이고 자유라고 보았다. 자유는 자기 결정이요 의존 속의 비의존이다.”(손동현)

November 17, 2013: 4:45 pm: bluemosesErudition

1 Corinthians 2:9 NIV

However, as it is written: “What no eye has seen, what no ear has heard, and what no human mind has conceived” — the things God has prepared for those who love him —

November 16, 2013: 2:32 pm: bluemosesErudition

정혜신, 이명수, 김두식 _ 이들의 ‘욕망해도 괜찮아’가 쵸감 트룽파를 상기시킨다.

: 2:06 pm: bluemosesErudition

“1998년 외환위기 시대,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이 불 때였다. 당시 그(정혜신)는 구조조정 후 회사에 살아남은 사람들 상당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증상이 비슷한 ADD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녀는 이 논문에서, ADD 증후군은 예측 불가능하고 위협적인 외부적 요인 때문에 그 상황을 겪은 사람의 대다수가 걸릴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 사회는 이 생존자 그룹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잘 적응하고 있다고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 이들 내부에서는 심각한 정신적 황폐화가 진행 중이므로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