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투구를 두려워하면 올무에 빠진다. 주를 의지하여 악연을 끊는다.
“나는 명함 100장을 찍으면 6개월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을 만큼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다. 실력이 없으면 인맥도 통하지 않는다. 국가행사를 촬영할 때 난 가장 좋은 양복을 입는다. 카메라 가방도 메지 않는다. 경호원도 움직일 수 없는 행사장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카메라맨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따르고, 그런 내 뒤를 조수가 또 그림자처럼 따른다. 내가 조수를 향해 엄지와 검지를 펴면 105㎜ 스탠더드 렌즈를 건네라는 사인이다. 다섯 손가락을 다 펴면 200㎜를 달라는 뜻이고. 다 쓴 렌즈를 뒤로 던지면 조수는 그걸 날렵하게 받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그림처럼 이뤄져야 한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존영을 찍거나 의전촬영을 할 때 두 개 업체를 경쟁시켰다. 그 중 한 업체로 선정되면 나는 촬영 2시간 전에 도착해 완벽한 세팅을 해놓고 대통령을 기다렸다. 촬영 후 홍보수석이 사진은 언제쯤 나오느냐 물으면, 공직사회 언어로 ‘내일 17시 30분까지 보고하겠습니다’ 했다.(웃음) 경쟁사 사진사가 ‘저희는 들어가 봐야 알겠는데요’ 하면 게임은 끝이었다. 17시 30분이라고 했어도 그보다 1시간 먼저 와서 보고했다. 돈이든 물건이든 약속시간보다 빨리 보여줘야 상대가 기쁘지 않겠나. 그런 처세를 허바와 신라호텔, 국제그룹에서 배웠다.”
“나는 고객이 뭘 원하는지 끊임없이 찾았다. 촬영 중 알게 된 고객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절대 함구했고, 그들 됨됨이를 공식적으로 평가하지도 않았다. 촬영 있는 날엔 김치도 먹지 않는다. 의상도 중요하다. 내겐 구두 50족, 와이셔츠 50벌, 양복 30벌이 있다. 옷이 구겨질까 봐 푹신한 소파에도 앉지 않는다. 요즘도 예식장에 가면 점퍼때기 걸친 사진사가 손가락으로 하객들을 가리키며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명령하던데, 천하에 배워먹지 못한 놈들이다.”
“지금도 나는 ‘못한다’소리 하는 놈들이 제일 싫다. 어떻게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사나? 지금도 불시에 각 지점을 방문해 직원들 찍어놓은 사진들을 모니터하는데, 개차반으로 찍었다가 걸리면 ‘축 사망’이다. 국가든, 한 개인이든 역사를 기록해야 할 사진장이들이 책도 안 읽고 신문도 안 읽는다. 야트막한 기술에만 매달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만 굴린다. 이러니 나한테 안 맞고 배기나? 사진이 왜 이 모양이냐고 물었을 때 고객 탓하는 놈은 더 맞는다.”
“정신이 깃든 상품을 우리는 명품이라고 한다. 명품은 아날로그에서 나온다. 피사체와 교감할 시간, 나의 생각을 심을 시간, 최고의 순간을 포착할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나. 맘만 먹으면 눈 가리고 아웅 할 수 있다. 아류(프랜차이즈) 만들어 쉽게 돈 벌 수 있다. 하지만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기록의 산물인 사진은 100년을 가야 하는 명품이어야 한다.”
* 남산 ‘란 스튜디오’ 김재환
“한국의 놀이터는 유럽 같은 다른 나라에서 베껴 온 것 같다. 자세히 보면 그것은 놀이기구가 아니라 스포츠기구에 가깝다. 움직임만을 유도하는 기구이지 놀이기구가 아니다. 한번 생각해보자. 아이들이 순서를 기다려서 미끄럼틀을 온종일 여섯 번, 최대 열 번 탔다고 했을 때, 모두 합쳐 2분 30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게 놀이일까.”
“우리는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 여기서 ‘강하다’는 것은 자기감정을 스스로 알고 있는 아이를 말한다. 아이들이 그런 감정을 키우려면 스스로 좋은 것을 만들어보고, 좋은 것을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 경험은 놀이를 통해서 할 수 있다.”
* 귄터 벨치크 + 편해문
“다수결 원칙을 민주주의의 본질로 오해하는 것도 민주정치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이유의 하나입니다. 국회에서 야당과 절충과 타협을 하기보다 수로 밀어붙이려는 의식이 지배하는 것도 다수결을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수결은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본질적 가치인 자유·평등·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형식원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다수결로 하더라도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실현에 역행하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타협과 절충을 위한 토론과정을 생략한 채 수로 밀어붙이는 다수결은 다수의 독재의 불과합니다.”(허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