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내러티브는 ‘이야기’, ‘더 큰 그림’ 등으로 환원할 수 있다. 그것은 영향사(Wirkungsgeschichte)요 세계관(Weltanschauung)이기에.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내러티브는 ‘이야기’, ‘더 큰 그림’ 등으로 환원할 수 있다. 그것은 영향사(Wirkungsgeschichte)요 세계관(Weltanschauung)이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실로 그리스도교가 믿는 것을 고백할 때 여기에 담긴 진리는 어떤 이론보다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는 오스트리아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저작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우리는 특정 단어의 의미를 물어서는 안 된다. 의미란 그 단어의 쓰임 안에 있다”고 말하여 외쳤다. “생각하지 말고 바라보라!” 마찬가지로 하우어워스는 말한다.
“윤리란 어떤 규칙이나 원리를 우선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윤리는 어떻게 하면 세계를 진실하게 볼 수 있는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아가 어떻게 변혁되어야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스도교인의 경우 이러한 관점은 내러티브가 만들어내는 교육을 통해 개발된다.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타인들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향해 죄에 관한 언어를 쓸 수 있을지를 알려 준다.” (Stanley Hauerwas, The Peaceable Kingdom, 1986: 33)
With the Grain of the Universe
“<우주의 결에 따라>에서 나는 바르트가 기독교적 확신의 묵시론적 성격을 회복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세상의 모습에 대한 우리의 기술(記述)’이 ‘세상을 올바르게 기술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가‘와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바르트는 신학적 진술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구성해야 할 기본 문법,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한 문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제공해 주었다.”(스탠리 하우어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