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섬의 미노스왕은 그의 아들이 아테네에서 객사하자 대선단을 이끌고 아테네를 침공하여 아테네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 결과 9년마다 아테네 처녀 7명과 총각 7명을 공물로 받기로 하고 회군했다. 마침 모험을 끝내고 아테네로 귀국한 테세우스는 자신이 왕자임에도 불구하고 부왕에게 간청하여 공물의 일원으로 크레타섬의 미노스왕국으로 간다.”
“크레타섬의 미노스왕은 그의 아들이 아테네에서 객사하자 대선단을 이끌고 아테네를 침공하여 아테네의 항복을 받아냈다. 그 결과 9년마다 아테네 처녀 7명과 총각 7명을 공물로 받기로 하고 회군했다. 마침 모험을 끝내고 아테네로 귀국한 테세우스는 자신이 왕자임에도 불구하고 부왕에게 간청하여 공물의 일원으로 크레타섬의 미노스왕국으로 간다.”
“장인의 배움은 개인 또는 공동체에서의 학습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학습에서 의식, 의도, 의미, 간주관성, 사회적 관계 등과 같은 인간적 요소들만이 아니라 도구, 기술, 객체, 사물, 담론 같은 물질적 요소를 동시에 강조하는 사회물질적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일의 세계는 이런 물질들로 가득 차 있고 인간과 비인간은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Fenwick, Edwards, Sawchuk, 2011).”
“뭐든 한 가지를 제대로 잘 하면 다른 것도 잘한다는 말도 있다. 이것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다른 모든 것이라기보다는 적어도 ‘근접 영역(proximal zone)’을 잘한다는 것이 더 맞다. 마치 비고츠키의 근접발달영역처럼 말이다. 여기서 근접 분야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근접의 개념과는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엉뚱한 분야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장인들은 자신의 일을 놓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의 일에 도움이 될 만한 분야로 일을 확장해 갔다. 예를 들어, 한복 장인이 가죽을 다룬다면 어떤가? 주조 장인이 플라스틱을 연구한다면 어떤가?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분야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한복 장인은 가죽 한복을 만들었고 주조 장인은 플라스틱 사출로 분야를 확대하여 자동자 제조에 이용하였다. 따라서 다기능과 통섭, 또는 융복합이 처음부터 여러 분야를 섭렵하여 단순히 합한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는 창조는커녕 죽도 밥도 안 된다. 자신의 분야를 깊게 파고 그것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넓이를 확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1. 금욕과 치부를 연계한 청교도 몰이해 개탄
2. 특정 시대의 정신과 그것이 주조하는 윤리 고찰
3. 정념이 이해관계로 수용되는 수수께끼 해명
“니클라스 루만의 <법사회학>은 ‘법이 어떻게 형성되어 실정화되는가’에 대한 사회학적 응답이다.” “루만은 법의 본래적인 기능을 사회관계의 장에서 상대에게 기대하는 행동 그리고 상대가 나에게 기대하는 행동이 실제로 벌어지는 확실성의 보장에서 찾는다. 그러한 기대의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범례화하고 정식화하는 것이 바로 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법은 기대강제라는 성격을 지닌다. 쉽게 말해 법은 기대의 메커니즘을 강제적으로 작동시키는 게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 기대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할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 작동할 것이라고 믿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법은 우리의 일상에서 믿음과 기대를 바탕으로, 즉 규범적으로 정착됨을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건 법체계가 절대 변하지 않는 정적인 체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은 법과 관련된 모든 사건에서 행위 당사자들의 관계, 서로를 향한 기대, 기대의 확실성 등의 정도에 따라 역동적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법체계는 그 역동성을 바탕으로 자기충족적인 체계로 거듭난다. 우리가 법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를 법 스스로 규율한다는 것이다. 법을 관리하는 건 법 자체다. 이것이 ‘법-체계’의 진정한 의미다.”
“루만의 이론적 정수는 1984년 출간된 「사회체계이론」(Soziale Systeme)에서 시작하여 1997년 「사회의 사회」(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에서 완결된다. 두 저서 사이에 경제, 학문, 법, 예술 및 종교, 정치, 교육체계의 각론이 각각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나에게 예술은 그 숨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었다. 이제 와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작은 창문은 벽 높은 곳에 있어서 바깥 경치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의 색깔 변화나 공기가 흐르는 기미는 느낄 수 있었다. 손은 닿지 않고, 창문으로 도망칠 수도 없지만, 그 작은 창문 덕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 … 고야는 궁정화가이면서 자유주의를 신봉했고, 그 자유주의를 조국 스페인에 가져다줄 줄 알았던 나뽈레옹 군대의 잔학함을 보다 못해 <전쟁의 참화> 연작을 제작했다. ‘근대’의 문턱에 서서 그 밝음과 어둠을 응시하고 묘사해낸 고야, 그리고 자신도 찢기듯 죽어간 고야는 나에게 지하실 벽에 뚫린 작은 ‘창(窓)’이었다. 고야처럼 괴로워하고, 고야처럼 싸우고, 고야처럼 죽자. 그 동경이 곧 ‘창’이다.”(서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