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ne, 2017

June 7, 2017: 11:51 pm: bluemosesErudition

Sanford “Sandy” Koufax = [Regular] Clayton Edward Kershaw + [Post] Madison Kyle Bumgarner

: 7:05 pm: bluemosesErudition

“이탈”이 아니라 “이석”

: 1:18 pm: bluemosesErudition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 On Writing>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형용사로 포장돼 있다”고 하였다. 과도한 “선의”는 형용사인 셈이다.

: 1:11 pm: bluemosesErudition

“The (capitalist) State should not be regarded as an intrinsic entity: like ‘capital’, it is rather a relationship of forces, or more precisely the material condensation of such a relationship among classes and class fractions, such as this is expressed within the State in a necessarily specific form.”(Nicos Poulantzas)

: 11:51 am: bluemosesErudition

제임스 패커가 쓰고 홍종락이 옮긴 <성령을 아는 지식>의 원제는 “Keep in Step With the Spirit”이다. 여기서 그가 깡마른 성령론을 주장했을라고.

: 9:53 am: bluemosesErudition

Jeroboam still remained in his sin.

: 1:49 am: bluemosesErudition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_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8.

June 6, 2017: 2:08 pm: bluemosesErudition

“Because this people draw near with their mouth and honor me with their lips, while their hearts are far from me, and their fear of me is a commandment taught by men, therefore, behold, I will again do wonderful things with this people, with wonder upon wonder; and the wisdom of their wise men shall perish, and the discernment of their discerning men shall be hidden.”(Isaiah 29:13~14)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fools despise wisdom and instruction.”(Proverbs 1:7)

: 1:17 am: bluemosesErudition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을 읽고, OOOOOO을 논하던 중 헤겔의 법철학 서문이 떠올랐다. 있던 것을 변개한 무엇이라 하니, 양배추를 데워 나누는 것과 다름 없다.

: 12:53 am: bluemosesErudition

1. 한겨레21 제1056호 오늘의 커버 제목. “그들은 인민이자 민중이자 주권의 담지자”

2. 담지자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3. 국립국어원은 담지자를 “담력과 지혜의 준말”에 者를 덧붙인 거라 답변한 바 있다.

4. 수십 년 전 서인숙은 “Man as Bearer of the Look”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시선의 담지자로서의 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