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티스는 아킬레우스의 머리부터 발목까지 스틱스 강에 담갔다.
Emmanuel-Joseph Sieyès, 1748~1836
에마뉘엘 시에예스는 프랑스 절대왕정의 구체제(앙시앵 레짐)가 무너진 1789년부터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테르미도르 쿠데타로 막을 내린 1794년까지 프랑스 대혁명의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그는 가톨릭 예수회 성직자이자 뛰어난 법학자였다. 제헌의회 헌법과 프랑스 인권선언이 그의 손에서 정초됐다. 최초로 사회학(sociologie)이란 용어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시에예스는 혁명이 있기 몇 달 전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치 팸플릿을 출간했다. 명쾌한 논리와 선동적 어투로 무장한 책은 혁명의 기운을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당시 프랑스는 인구 2,500만명의 2%도 안 되는 제1신분(성직자)과 제2신분(귀족)이 명예와 특권과 부를 독점한 세습제 신분 사회였다. 제3신분(평민)은 특권 신분이 꺼리는 힘들고 고된 역무를 담당했다. 군주는 신분을 초월한 존재였다.
시에예스는 모두 6개 장으로 짜인 책의 절반을 제3신분에 국민 주권을 부여하는 데 할애했다. 이때 국민은 “동일한 입법부에 의해 대표되며, 공통의 법률 아래 살아가는 구성원 집단”이다. 시에예스는 제3신분을 “구속되고 억압된 전체이되, 특권적 신분이 없으면 자유롭고 번성하는 전체”로 규정했다. 제3신분이 완벽한 하나의 국민임에도,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그 무엇이 되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1614년 이후 1789년까지 개최되지 않았던 삼부회. 당시 프랑스 왕가는 연간 세수입 절반이 국채 상환과 이자 비용으로 소진되는 상태에서, 미합중국 독립전쟁을 지원하여 재정이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국가경제 파산에 이르게 되었다. 루이 16세는 면세 특권을 누리던 귀족과 성직자 과세안을 제시하였으나 반발에 부딪히고, 1789년 소집한 최후의 삼부회는 봉건적 특권의 축소와 폐지를 요구하는 제3신분과 귀족, 성직자의 대립에 의해 붕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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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uctural hermeneutics(or Objective hermeneutics)
“두 번째 목표는 구조해석학의 대표자들이 객관적 해석학이라는 이름으로 표방해 온 방법론적 객관성 주장을 내재적으로 비판하고, ‘해석의 종결 불가능성’(딜타이)이라는 해석학적 인식론의 근본 명제가 구조해석학의 방법적 엄밀성에 의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견고해짐을 논증하는 것이다.”
10-12. 이 책은 세렌디피티의 행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우연한 발견들을 우연이 아니게 만드는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이 주제입니다. (중략) 인간의 생각이 지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각을 통해 발견해내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그렇게 발견한 것을 다시 생각을 통해 현실에 구현하는 힘입니다.
14-15. 몇몇 영역에서 이미 인간을 뛰어넘은 인공지능은 주어진 문제와 관련해서 쉴 새 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그를 바탕으로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그 문제 자체에 대해 질문을 하지는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그저 주어진 것만을 봅니다. 그런 탓에 주어지지 않은 새로운 것을 볼 수는 없습니다. …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힘 그리고 그렇게 새로이 발견한 것을 현실에 ‘구현’해내는 힘, 이 두 힘은 인간의 지적 문명을 구동하는 힘인 동시에 인간의 생각이 지닌 고유한 본질입니다. 철학자 플라톤이 위대한 까닭은 그가 감각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관념의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고, 프로이트가 놀라운 이유는 의식하지 못하던 영역을 인식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는 영역들, 예를 들면 10의 마이너스 35승 미터의 세계나 10의 27제곱 미터의 세계까지 탐색하고 들여다보고자 애쓰는 이론과학자나 그렇게 본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시도하는 실험과학자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고 또 그렇게 본 것을 다른 사람도 볼 수 있도록 하려는 열정,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생각’의 본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