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Law, Introduction
마르크스가 비판한 종교의 본질은 ‘섬김’(servitude)이 아닌 ‘조작’(manipulation)이었다.
래리 크랩의 <결혼 건축가>를 읽기 바란다.
On the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Law, Introduction
마르크스가 비판한 종교의 본질은 ‘섬김’(servitude)이 아닌 ‘조작’(manipulation)이었다.
래리 크랩의 <결혼 건축가>를 읽기 바란다.
Fear grows when we are unable to completely trust in God. Trusting completely in God is the way to destroy fear. “If I fear God, and I am not anxious in the world.”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 Einleitung
7. 독일에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본질적으로 끝난 것이고, 종교에 대한 비판은 모든 비판의 전제이다.
8. 종교적 비참함은 현실적인 불행의 표현이자 현실적 불행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8~9. 비판은 사슬에 매여 있는 거짓 꽃들을 뜯어내버렸는데, 이는 인간이 환상도 위안도 없는 사슬을 차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슬을 벗어던져 버리고 살아 있는 꽃을 갖기 위해서이다.
9. 그러므로 진리의 피안이 사라진 뒤에 차안의 진리를 확립하는 것은 역사의 과제이다. 인간의 자기소외의 신성한 형태가 폭로된 다음, 신성하지 않은 형태들 속에 있는 자기소외를 폭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역사에 봉사하는 철학의 과제이다. 그런 까닭에 천상에 대한 비판은 지상에 대한 비판으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법에 대한 비판으로, 신학에 대한 비판은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전환된다.
14. 세계사적 등장인물의 마지막 국면은 희극이다. 아이스퀼로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에서 한 번 비극적으로 죽은 바 있는 희랍의 신들은 또 한 번 루키아누스의 <대화>에서 희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역사의 진행은 왜 이러한가? 인류가 즐겁게 그들의 과거와 결별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독일의 정치 세력들에게도 이 즐거운 역사적 숙명을 청구한다.
19. 물론 비판이라는 무기는 무기에 대한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 물질적인 힘은 물질적인 힘이 전복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론도 대중을 사로잡는 순간 물질적인 힘이 된다.
20.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은 그 속에서 인간이 천대받고 구속받고 버림받으며 경멸받는 존재로 되어 있는 모든 관계를 전복시키라는 정언 명령과 더불어 끝나는데 … 물론 루터는 헌신에서 나오는 예종(隸從)을 확신에서 나오는 예종으로 대체함으로써 앞의 것을 극복하였다. 그는 신앙에 대한 권위를 회복시킴으로써 권위에 대한 신앙을 타파하였다. 그는 평신도를 성직자로 변화시킴으로써 성직자를 평신도로 변화시켰다.
22. 사상이 실현을 촉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현실이 스스로를 사상으로 밀고가야만 한다. (중략) 어떻게 해서 독일은 목숨을 건 도약을 통해 자신의 한계뿐만 아니라 현대 여러 국민의 한계, 독일이 실제로 자신의 한계뿐만 아니라 현대 여러 국민의 한계, 독일이 실제로 자신의 현실적 한계로부터의 해방이라 느끼고 추구해야만 하는 한계까지도 뛰어넘을 것인가?
23. 사람들이 로마의 만신전에서 모든 민족의 신들을 보았듯이, 신성로마적 독일 제국에서는 모든 국가 형태들의 죄악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절충주의가 지금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수준에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정치적-미학적 대식가인 어떤 독일 국왕이 보증을 서고 있는데, 그는 봉건적이든, 관료적이든, 절대적이든, 입헌적이든, 귀족적이든, 민주적이든, 왕권의 모든 역할들을 인민의 인격에 의해서가 아닐지라도 자기 혼자서, 그리고 그의 인민 전체를 위해서가 아닐지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수행하려고 한다.
11번째 테제.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어차피 바쁘고 자기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때그때라도 해야지 생각하고 그런 면에 좀 능한 편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하려고 또 메모도 틈틈이 하고, 노트도 많이 만들지요.” “그날 생각한 것은 하루 저녁에 어느 정도 글로 맺어지는 식으로요.”
“1980년 광주의 마지막 날, 고3인 강용주는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도청 사수파의 전사가 된다. 살아남은 그는 항쟁 당시 헌신적으로 부상자를 치료하던 의료인들을 기억하며 의대에 입학한다. 민주화운동에도 열중하던 그는 2학년 때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다. 그는 전향서(준법서약서) 쓰기를 거부함으로써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가 된다. 간첩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을 포기하라는 폭력에 굴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9년 14년 만에 출소한 그는 복학했고 2008년 전문의 자격을 얻는다. 조작간첩사건 희생자들의 재심 소송에 연대하며 국가 폭력과 고문 피해자들의 치유를 돕는 광주 트라우마센터의 첫 원장을 맡는다. (중략) 그는 이른바 ‘보안관찰 처분’ 상태다. 3개월에 한번씩,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갔고 생활비는 어디서 벌었는지 신고해야 한다. 10일 이상 주거지를 떠나거나 외국여행을 하게 되면 동행을 포함 낱낱이 신고해야 한다. 그밖에도 관할경찰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모든 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강용주는 그에 응하지 않았고 기소되어 재판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