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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3, 2018: 3:38 pm: bluemosesErudition

88~89쪽 _

원미동 시인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다. 퀭한 두 눈에 부스스한 머리칼, 사시사철 껴입고 다니는 물들인 군용점퍼와 희끄무레하게 닳아빠진 낡은 청바지가 밤중에 보면 꼭 몽달귀신 같다고 서울미용실의 미용사 경자언니가 맨 처음 그를 ‘몽달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92~93쪽 _

그는 오로지 시에 대하여 말하고 시를 생각하고 시를 함께 외우자는 요구밖에는 몰랐다. 그에게는 시가 전부였다. 바람이 불면 ‘풀잎에 바람 스치는 소리’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 수녀가 지나가면 문득 “열입곱 개의, 또는 스물한 개의 단추들이 그녀를 가두었다”라고 부르짖었다. 그는 하루 종일이라도 유명한 시인들의 시를 외울 수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외운 시구절만 가지고 몇 시간이라도 대화를 할 수 있다고 그가 말하였다. 그게 바로 시적 대화라고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밤새도록 시를 읽는다고 하였다. 몽달씨는 밤이 되면 엎드려 시를 외우고, 다음 날이면 그 시로써 말하는 사람이었다.

108~109쪽 _

나는 청소부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사실은 어느 부잣집의 버려진 딸이다, 라는 식의 유치한 상상은 작년도 못 되어 이미 졸업했었다. 요즘의 내 상상이란 외계인 아버지와 지구인 엄마와의 사랑, 뭐 그런 쪽의 의젓한 것이었다. 아무튼 나의 기막힌 상상력으로 인해 몽달씨는 부분적인 기억상실증 환자로 결정되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확인할 일만 남은 셈이다.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나는 김반장네 가게일을 거들어주고 난 뒤 비치파라솔 밑의 의자에 앉아 뭔가를 읽고 있는 몽달씨에게로 갔다. 보나마나 주머니 속에 잔뜩 들어있는 종이조각 중의 하나일 것이다. 멀쩡한 정신도 아닌 주제에 이번엔 기억상실증이란 병까지 얻어놓고도 여태 시따위나 읽고 있는 몽달씨 꼴이 한심했다.
“이거, 또 시예요?”
“그래. 슬픈 시야. 아주 슬픈……”
몽달씨가 핼쑥한 얼굴을 쳐들며 행복하게 웃었다. 슬픈 시라고 해놓고선 웃다니. 나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몽달씨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다 나았어요?”
“응. 시를 읽으면서 누워 있었더니 금방 나았지.”
금방은 무슨 금방. 열흘이나 되었는데. 또 한 번 나는 몽달씨의 형편 없는 정신 상태에 실망했다.
“그날 밤에 난 여기에 앉아서 다 봤어요.”
“무얼?”
“김반장이 아저씨를 쫓아내는 것……”
순간 몽달씨가 정색을 하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전의 그 풀려있던 눈동자가 아니었다. 까맣고 반짝이는 눈이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않을 작정인지 괜스레 팔뚝에 엉겨붙은 상처 딱지를 떼어내려고 애쓰는 척했다. 나는 더욱 바싹 다가앉았다.
“김반장은 나쁜 사람이야. 그렇지요?”
몽달씨가 팔뚝을 탁 치면서 “아니야”라고 응수했는데도 나는 계속 다그쳤다.
“그렇지요? 맞죠?”
그래도 몽달씨는 못 들은 척 팔뚝만 문지르고 있었다. 바보같이. 기억상실도 아니면서…… 나는 자꾸만 약이 올라 견딜 수 없는데도 몽달씨는 마냥 딴전만 피우고 있었다.
“슬픈 시가 있어. 들어볼래?”
치, 누가 그 따위 시를 듣고 싶어할 줄 알고 내가 입술을 비죽 내밀거나 말거나 몽달씨는 기어이 시를 읊고 있었다. ……마른 가지로 자기 몸과 마음에 바람을 들이는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하는 순교자 같다……
“너 글씨 알지? 자, 이것 가져. 나는 다 외었으니까.”
몽달씨가 구깃구깃한 종이쪽지를 내게로 내밀었다. 아주 슬픈 시라고 말하면서. 시는 전혀 슬픈 것 같지 않았는데도 난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하였다. 바보같이, 다 알고 있었으면서…… 바보 같은 몽달씨……

_ 1987년 발간된, 양귀자의 연작소설집 <원미동 사람들>에 수록된 “원미동 시인”, 87~109쪽.

: 3:35 pm: bluemosesErudition

“시인의 운명은 생각보다 일찍 저물었다. 릴케는 1923년 발병하여 몸져눕게 된다. 그때 이미 백혈병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흔히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었다고들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장미 가시에 찔린 적은 있었다. 1926년 9월 릴케의 여행을 도와줄 이집트 여인 니메트 엘루이가 찾아왔을 때 그녀를 위해 장미를 몇 송이 따주다가 그만 장미 가시에 손가락을 다친 것이었다. 백혈병 때문에 상처가 쉬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죽음의 원인이 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1926년 12월 29일 새벽,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원인은 백혈병이었다. 이듬해 1월 2일 키펜베르크 부부, 레기나 울만, 난니 분덜리 폴카르트, 베르너 라인하르트, 루 알버트 라자르트, 그리고 몇몇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라롱의 교회묘지에 안장되었다. 묘비에는 릴케의 유언에 따라 다음 시구가 새겨졌다.”

[문현미 역]
장미꽃이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기꺼움이여.

[김주연 역]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 3:32 pm: bluemosesErudition

이 소설의 주인공, ‘유진’이 수정란의 형태로 내 안에 착상된 셈이다. (중략)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들이 늘 ‘그’였기 때문이다. 외부자의 눈으로 그려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결국 ‘나’여야 했다. 객체가 아닌 주체여야 했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내 안의 악이 어떠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이려면.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이 일을 해보겠다는 결심이 섰다…… 세 번을 다시 썼다…… 작가는 자기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한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배웠으면서도.

_ 정유정, <종의 기원>, “작가의 말”, 379~3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