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실붕괴를 몸소 체험하였다. 첫 만남 부터 선생을 계약제 노예처럼 대하려 드는 아이들이 있다. 금전으로 인격을 조롱하는 어느 여중생에게. “실력만 없는 줄 알았더니 예의도 없구나. 선생이 가르칠 수 없는 학생이니, 수업료 받고 나가라. 애초 인격적 유대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금전관계가 가능했을 거라 여기나.”
2. 공교육 정상화를 사수하는 이들과 사교육의 우위를 내세우는 이들 사이에서, 양지와 음지 가운데 한 발씩 걸친 나는 내적 모순 - 하나의 ‘앞면’과 ‘뒷면’인 둘은 한쪽을 ‘정상화’할수록 다른 한쪽이 ‘공고화’된다 - 을 지양하는 변증법이 무용한 영역도 있음을 깨닫는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하더라도 근대의 학교는 ‘선발’로 환원되는 한 그런 존재인 것이다.
3. 경제학자 Bowles와 Gintis에 대한 교육사회학계의 비판이 적지 않지만, 학벌이 취업의 발판인 이상 ‘경제와 교육’은 주종관계의 형태를 유지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본질’이 아닌 ‘현상’을 기술하였던 것이다. 경제학자가 교육부총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국가에서 교육경제학이 아닌 ‘사회의 교육’을 거론하는 것은 논외 밖이다. 애처로운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