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pril 27th, 2010

April 27, 2010: 9:42 pm: bluemosesErudition

1. “조선은 문치주의 사회였다. 학맥을 통해 정치세력을 형성했고, 그 사상과 이념에 따라 정책과 노선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정책과 노선을 통해 백성들의 삶 속에서 검증을 받고, 그 검증을 통해 권력을 차지하느냐 못하느냐가 결정되던 시대였다.” “그동안 사람들은 조선시대에 ‘봉건’이라는 굴레를 씌웠다. 신분적 억압, 부자유, 남녀차별 등 계몽주의 서사가 덧칠한 ‘과거’, ‘전통’의 다른 이름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인식을 벗어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오항녕, 2010)

2. 위 “주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조선시대를 계몽주의의 서사로써 덧칠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는 신분적 억압, 부자유, 남녀차별이라는 것들로써 특징지어졌다. 달리 생각해보면, 조선시대에 신분적 억압, 부자유, 남녀차별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사태를 왜곡한, 계몽주의적 서사의 덧칠인 것이다. 그렇다면 강명관의 <<열녀의 탄생>>에 등장하는, 시부모의 병을 낫게 하려고 허벅지 살을 베어내 끓여먹이고 국가의 표창을 받은 열녀의 행실과 그것을 장려한 것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성리학적 이상이 넘쳐 흐르는 고귀한 사회의 충실한 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자기의 육신을 희생함으로써 잃어버린 나를 되찾아가는 행위’라고 해야 하는가.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억압기제”아닐까. 억압기제는 근대 계몽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체제’는 필연적으로 억압기제를 파생시킨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체제는 “이념형 조직”을 운용한다. 어쨌든 저자는 조선시대의 실상을 왜곡하면서 계몽주의 서사가 잘못 덧씌운 것을 입증하기 앞서 강명관의 <<열녀의 탄생>>이 조선시대사에 대한 왜곡임을 입증해야 할 듯하다. “이 책에서 독자가 읽게 되는 저자의 착상과 연구노트, 특히 현대적 논의와 관련된 부분은 ‘혹세무민’의 우려가 있는 ‘迂闊한 소리’이므로 철저히 간과해야 할 것이다.”

3. “<곁에 두는 세계사>를 보니 1670년과 1671년 조선에서는 ‘경신 대기근’이 발생했군요.”(gaudium)

4.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조선왕조가 대기근을 타개하기 위해 매관매직을 하여 일반 백성들을 구제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른바 ‘17세기 행성충동설’인데요. 지난번 석학 강좌 때 그리 얘기하더군요. 이태진 교수 주장은, 흔히 조선의 멸망 원인으로 지목되는 매관매직이나 부정부패가, 실제로는 행성충돌로 인한 피해에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일제 식민사학이 이를 왜곡시켰다는 것입니다.”(cogitaum)

5. “왕만 공명첩을 팔아먹은게 아니라 세도 가문도 팔아먹었는데(이들이 더 팔아먹었겠지만) 이게 과연 ‘훌륭한 수단’인지 의심해보진 않는 모양이군.”(gaudium) 

6. “18세기 영조와 정조의 시대가 조선의 문예부흥기요, 문화적 성세(盛世)라고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 그렇긴 하지만 이 시기 사대부 문화의 현상적 융성은 어디까지나 사대부 ‘문화 틀’ 속에서의 발전이요 변용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 발전이란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명청대(明淸代) 중국 문화나 예술의 아류적 수용에 가까운 것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언진의 작품 <호동거실>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호들갑에서 벗어나 “18세기 조선 사대부 문화의 허상과 취약점, 그 국한성을 읽어 내는 하나의 중요한 시좌(視座)를 확보하게 된다.” 체제내화된 사대부들의 텍스트만 읽을 때에는 감지할 수 없는 반역성 - 근대성이 아니다 - 을 발견함으로써 시대에 대한 균형잡힌 통찰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7. “조선시대 말(末)을 한번 떠올려 보자. 1800년에 정조가 죽었다. 정조를 놓고 애상 띤 어조로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있다. … 다산 정약용은 자신의 책 <<목민심서>>에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를 실으면서 그 사연까지 적어두었다. 그 시는 1803년에 강진에서 지은 것이다. 한 백성의 집에서 아이를 낳은 지 3일 만에 그 아이가 군적에 올랐는데, 그 집에서 군포를 내지 못하자 관에서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 갔다. 이 일을 당한 아이의 아버지는 칼로 자신의 남근을 잘라 버리면서 ‘이 물건 때문에 고생’이라 했으며, 그 아내가 그 남근을 들고 관가에 가서 호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 정조 때는 태평성대였는데 죽은 지 고작 3년 만에 나라가 콩가루 된 걸로 봐야 하는가. 아니다. 그전부터 나라는 콩가루였다. 조선시대 각 신분계층 구성 인구 비율 통계가 그걸 말해준다. 1600년대 말 대구 지역을 예로 보자. 양반이 9.2퍼센트, 양민이 53.7퍼센트, 노비가 37.1퍼센트였다. 이 비율이 약 100년쯤 지나 1780년대쯤 오면 양반 37.5퍼센트, 양민 57.5퍼센트, 노비 5퍼센트가 되고, 1850년대 철종 때쯤 오면 양반 70.3퍼센트, 양민 28.2퍼센트, 노비 1.5퍼센트가 된다. 조선시대 말의 양반이 인구의 70퍼센트가 넘는 것이다. 영정조라는 현명하신 왕들도 이 도도한 양반 증가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기를 쓰고 양반이 되려 했는가.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병역의무도 납세의무도 없었다. 인구의 30퍼센트가 70퍼센트를 먹여 살리는 나라가 정상인가. 고종이 도장 찍으며 자기 소유의 나라를 넘기며 제 잇속을 챙겼을 때 과연 30퍼센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면 21세기 한국은 다른가. 흔히 하는 말로 20대 80의 사회에서 80이 20의 특권층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그나마 낫다고 할 것인가. 그런데 정말로 알 수 없는 것은 왜 이 대다수의 80퍼센트는 20퍼센트의 못된 버릇을 배우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억울하면 이를 갈아 부치며 세상을 갈아엎을 결심을 하지 않고 출세할 생각만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왜 그런가.”

8. “1829년에 순조 즉위 30주년 경하연을 베푸는데 흉년으로 함경, 경상, 충청, 전라도에 기민이 259만 5천명이나 발생한건 뭘로 설명하나? 참고로 184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그때 조선 인구가 670만 1,629명. 그러니 259만여명이 기민이었다면 나라가 절단나는 수준이었다고 할밖에.”(gaudium)

9. 정조 사후 양반 수의 폭증과 함께 ‘하드리버그 = 조선’이 연상된다. “물적 토대”가 허술한 “통치 이념”은 정당화 명분일 뿐, 견고한 윤리를 존속시키지 못한다.

A. “조선을 보면 참으로 싸가지 있는 나라같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그런 싸가지 있는 나라의 왕족과 정승들이 나라를 팔아먹었을까 하는 것이다.”(gaudium)

B. “그들이 ‘싸가지’를 강조하여 얻고자 한 것을 나라를 팔아먹음으로써 얻을 수 있었기에 그리했으리라 생각합니다.”(cogitaum)

C. “통치이념을 팽개친 순간 [차마 표출하지 못했던] 돈독이 화악 올랐다고 봐야겠군.”(gaudium)

* ‘조선’과 ‘동독’은 각각 이념과 체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실례이다.

: 8:50 pm: bluemosesErudition

대안의 핵심은 “수술 중 각성 후 전향”의 극복이다.

: 8:06 pm: bluemosesErudition

내면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존재의 변화를 도모하는 자(Homo Educa)는, 영혼의 전환이 개인의 힘으로 불가능하고 공동체에서 살아감으로써만 성취 가능하기에 그것을 더불어 지향하는 공동체(Community of Praxis)를 추구한다. 일례로 恩送林을 들 수 있다.

: 8:00 pm: bluemosesErudition

“철학자들이 나라들에 있어서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 또는 ‘최고 권력자’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지혜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제 즉 정치권력과 철학이 한데 합쳐지는 한편으로, 다양한 성향들이 지금처럼 그 둘 중의 어느 한쪽으로 따로따로 향해가는 상태가 강제적으로나마 저지되지 않는 한, 여보게나 글라우콘, 나라들에 있어서, 아니 내 생각으로는 인류에게 있어서도 ‘나쁜 것들의 종식’은 없다네.”(473c-d)

“소크라테스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그런 주장을 털어놓으셨는데, 일단 그런 말씀을 하셨으니, 선생님께서는 각오하고 계셔야 합니다. 그야말로 많은 그리고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이를테면 일제히 웃통을 벗어던지고서는 맨 앞으로 저마다 닥치는 대로 무기를 들고서 놀랄 짓들을 저지를 양으로 힘껏 달려올 것이라는 걸 말씀입니다.”(473e)

“만일에 우리가 자네가 말하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피해 볼 작정이라면, 철학자들이 통치를 해야만 된다고 우리가 감히 주장하고 있는 그 철학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인지를 그들한테 정의해 주어야만 될 것 같으이.”(474b)

: 7:27 pm: bluemosesErudition

비자족적 존재, 영혼의 전환, 훌륭한 삶

: 7:06 pm: bluemosesErudition

1. Samuel Smiles(1812~1904)는 단순히 정치 개혁만으로는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개인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조(Self-Help, 1859)’의 정신을 설파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낳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낳”으며, 이는 제2의 천성으로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

2. 중산층은 “4년제 대학을 나오고, 한 직장을 10년 이상 다니고, 월소득이 400만원 이상이며, 30평 이상되는 아파트에, 2000cc 이상 자동차를 굴리는 사람”인가? Georges Pompidou(1911~1974)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악기를 다룰수 있는가? 수준급 이상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있는가? 외국어 하나 쯤은 자유롭게 구사하여 폭넓은 세계 경험을 하는가? 지우들을 초대하여 대접할 수 있는 자신있는 요리가 있는가? 사회 정의가 흔들릴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설 수 있는가?”

: 2:08 pm: bluemosesErudition

또 한 번 낙방했다. 낯익은 위로가 여전히 낯설다. 그러나 기억한다.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실패’는 유일한 길임을. 8년만의 대학원 졸업이었기에, 그래도 이만큼 자랄 수 있었다.

: 1:42 pm: bluemosesErudition

56인의 삶, 56인의 넋: 이들은 유독 감동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어머니 수술비를 위해, 홀로 되어 ‘살길을 찾아’ 시리고 힘들다는 해군에 지원”한 장병들의 전형적인 초상이다.

“남기훈 상사(36): 군 생활 중 정보처리 기사 등 자격증 7개를 딸 정도의 노력가였다. 박봉으로 부친과 형의 병원비를 감당하고, 결혼 4주년 기념으로 직접 수놓은 십자수를 아내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김종헌 중사(34): 고등학교 3학년 때 부모를 교통사고로 잃고 두 동생의 진학을 위해 자신은 대학을 포기했다.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했다. 해군에서 내연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던 그는 충무공이순신함장 등 표창을 다수 받았다. 결혼 7년 만에 얻은 아들이 겨우 갓 돌을 지났다.”

“최정환 중사(32): 지난해 결혼해 딸을 낳았다. 어린 딸이 크는 것을 자주 보고 싶다며 육상 근무를 지원한 상태에서 변을 당했다.”

“박경수 중사(29): 2002년 6월 제2 연평해전에서 총상을 입었으나 이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싸웠다. 국무총리 전투유공 표창을 받고 ‘용사’ ‘영웅’으로 불렸다. 그러나 해전 이후 전역까지 생각했다. 딸을 보며 공포를 극복하고 다시 천안함에 올랐다. 2004년 혼인신고만 마친 부인과 이번 훈련 뒤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문영욱 하사(23): 식당일을 하는 홀어머니와 함께 어렵게 생계를 꾸려왔다. 2007년 9월 홀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혈혈단신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다. 그러나 “살길을 찾겠다”며 휴학하고 2008년 4월 해군에 지원했다.”

“김동진 하사(19): 뇌종양이었던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군에 입대했다. 그러면서도 적은 월급을 쪼개 매달 유니세프와 복지관에 기부하고 봉사활동에까지 참여했다.”

“이상민 병장(21): 청각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정신지체 3급의 큰누나에게 특히 잘했다. 월급은 쓰지 않고 부모님 통장에 모두 넣어드렸다.”

“김선명 상병(21): 산업체의 기능요원으로 뽑혀 군 면제가 가능했지만 현역을 지원했다. 공고를 졸업한 후 어렵사리 모은 600만원은 결국 써보지 못했다. 중학교 때 여읜 어머니 기일에 맞춰 휴가를 조정하는 등 가족을 우선했다.”

“나현민 일병(20): 처음엔 불평했지만 최근에는 잘 적응하는 중이었다. 도시락을 직접 준비해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다녔던 나 일병은 제대 후 대학 입시를 준비해 수학과에 가겠다고 했다.”

“정태준 이병(20): 대학 전기과 1학년 재학 중일 때 어머니가 수술을 받았다. 종양 제거 수술에 돈이 많이 들어 휴학하고 입대했다. 3월 초 100일 휴가를 나가 그동안 모은 월급을 부모에게 드렸다. 배멀미가 있어 고생하면서도 가족에게는 내색하지 않는 장남이었다.”

: 1:09 pm: bluemosesErudition

0. 질문없는 교육: 정보와 지식 _ “질문이 원천 봉쇄된 ‘인터넷 강의’는 문제풀이에 관한 질문을 無化시킬수록 고평가된다. 질문없는 탐구는 기존의 것을 확인할 뿐 새로운 것을 궁리하지 않는다. 이는 자본주의도 경멸하는 바이다.”

1. 연극 <바냐 아저씨>: 고전의 정의와 의의

   1-1. Daily Me의 폐해

   1-2. 원문(”知行竝進”)을 강독하지 않고, 이차문헌에 의존하는 중등임용고시 출제위원: “늘 논의되는 작품만 갖고 논문을 쓰다 보니, 작품을 읽고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 논문을 읽고 논문을 쓴 꼴이 되어 버렸다(박희병, 2009).”

   1-3. 세계관 없는 기술자(techne)

   1-4. 지혜의 막장: 외양과 결과의 세계에서 본질과 당위를 추구한다.

2. 이상적인 교육, 그 형식과 내용

   2-1. 지, 정, 의: 서정성과 보편성

   2-2. 진, 선, 미: 본질과 당위 / 외양과 결과

3. 철학 - (사회) - 교육: 2 Mechanism, 3 Act, 12 Scene

4. 고전과 세상: 시대가 직면한 본질적 가치의 근원적 탐구와 사회의 교육: 윤리의 변혁, 그 역사적 고찰

   4-1. Pedagogy: 펠로폰네소스 전쟁

   4-2. Andragogy: 국가

5. 과제 기한과 양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