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th, 2010

December 20, 2010: 6:17 pm: bluemosesErudition

교육이 학습을 통제하고 추동하는 메커니즘이라면, 이상적인 교육은 “본질(眞)과 당위(善)의 완전을 추구하는 예술(美)”이다.

: 1:49 pm: bluemosesErudition

1. “당시에는 미처 자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부터 분신정국이 펼쳐졌던 1991년까지 사 년에 걸쳐, 그동안의 한국사회를 완강하게 지탱해온 뭔가에 불길이 지펴지면서 그 불꽃이 화려하게 타올랐다가 장엄한 모습 그대로 몰락해갔다. 그게 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 그리하여 그들이 목도하게 된 것은 일찍이 황지우가 시 <이준태(1946년 서울生, 연세대 철학과 졸, 미국 시카고 주립대학 졸)의 근황>에서 쓴 것과 같이 “그리고 大腦와 性器 사이”의 세계였다. 대뇌와 성기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대뇌는 대뇌끼리, 성기는 성기끼리 서로 피곤할 정도로 싸우던 시절은 끝이 났다. “그리고 대뇌와 성기 사이”의 세계에서는 개인들이 저마다 한 시대의 몰락을 주관화하고 내면화시키면서 전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말은 곧 한 시대의 상처가 각 개인의 내면, 그러니까 대뇌와 성기 사이에서 치유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그 시점부터 대뇌의 언어와 성기의 언어가 혼재하기 시작하다가 한동안은 성기의 언어만이 사회를 휩쓸었다. 이 사실은 1992년부터 라캉 유의 정신분석학이나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과 베르나르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따위의 영화가 크게 유행한데서도 잘 알 수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마광수 교수가 1991년 발표한 <즐거운 사라>로 구속된 것도,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라고 노래한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것도 바로 1992년의 일이었다. 1991년 5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뇌의 언어로 말하던 사람들이 1992년부터 모두 성기의 언어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1991년 5월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내면 풍경이었다.”

2. “하루키와 문단의 애증관계는 문제적이다. …  첫 번째 논란은 1992년의 표절 논란이다. 당시 연속으로 나온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1992년 3월),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1992년 6월), 주인석의 <희극적인, 너무나 희극적인>(1992년 7월), 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1992년 8월) 등이 논란을 점화했다. 장정일은 같은 해 <문학정신> 7·8호 합본호에 ‘표절의 세 가지 층위에 관해서’라는 글을 발표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하루키를 표절한 ‘무뇌아적 해프닝’이라고 주장했고, 박일문은 이에 맞대응해 장정일과 <문학정신> 발행인을 고소하기도 했다. 장정일은 자신의 이런 경험을 녹여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3년)를 썼다. … 오늘의 문학상(<살아남은 자의 슬픔>), 작가세계 문학상(<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등 문학상을 휩쓴 작품들, 그리고 ‘젊은’ 작가의 작품들이 한꺼번에 ‘하루키를 닮았다’란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해당 소설들은 ‘신세대 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불러일으킨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1990년대 신세대들은 새롭게 등장한 작품들에 열광했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40만 부가 팔렸다. 시인 장석주는 “1989년 처음 하루키를 봤을 때 얼리어답터들은 정말 새롭다,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우리 문학 역시 이 방향으로 갈 것이다, 거대담론이 소멸하고 일상·자아·욕망·사랑·성을 다루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델이 하루키가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구효서, 윤대녕, 장정일 등 새롭게 등장한 소설들이 실제로 그러했다. <상실의 시대>가 회고하는 상황이 한국과 흡사했다. 우리 작가들이 그런 대중 의식의 변화, 정서의 변화를 선점당했다.” 작가들은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자신의 이야기로 느낄 만한 작품은 이미 완벽한 형태로 나와 있었다. … 그런데 묘한 것은 젊은 작가들이 하루키를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2006년 9월 <교수신문>에서 실시한 30대 문인 설문조사(평론가 30명, 소설가 30명, 시인 35명)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해외 작가로 하루키가 지목되기도 했다(19명).”(구둘래, 한겨레 772호[2009. 8. 7])

: 12:09 am: bluemosesErudition

Thomas Hobbs(1588~1679 / 1651) _ Enlightened self-interest, Charles-Louis de Secondat Montesquieu(1689~1755 / 1748) _ Doux commerce, Immanuel Kant(1724~1804 / 1781) _ Ungesellige Geselligkeit, John Rawls(1921~2002 / 1971) _ Original Position, Elinor Ostrom(1933~) _ Adaptive Govern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