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8th, 2010

December 8, 2010: 11:46 pm: bluemosesErudition

베블런은 “공동체 전체의 효율적 생산 활동을 담보해 주는 지식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화폐 가치를 가질 수 없으며, 또 자본도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벌어지는 생산 활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한다. 오로지 특정인이 그 공동체 전체의 지식을 ‘볼모’로 잡아 사회 전체로부터 ‘몸값’을 뜯어낼 때에만 이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한 지식이 특정인의 이윤 창출을 위한 도구인 ‘자산’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떻게 이러한 ‘인질극’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가. 생산의 수단과 방법에 관한 공동체 전체의 지식은 경제 단계가 발달함에 따라 특정한 ‘사물’에 체현되기 마련이다. … 폭력을 동원한 지배 계급이 그 사물에 대한 법적 소유권을 설정하게 되는데, 이 근대적 소유권의 실질적 의미는 사실상 ‘자신이 그것을 사용할 권리’가 아니라 ‘남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권리’이다. 한 번 더 비유를 들자면, 지배 계급이 사회적 생산이라는 흐름이 통과할 수밖에 없는 기계나 장비 등의 ‘병목’을 잡아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동체 전체로서는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대가를 그 생산 수단의 소유자에게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되며, 이것이 그 장비로 생산된 재화에 대한 높은 가격과 그로 인한 높은 이윤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 자본 소유자가 이윤을 높이기 위해 하게 되는 일은 산업 생산을 한없이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효율적 활용을 일정한 이윤이 보장될 만큼만 가동되도록 제한하는 깽판 놓기, 즉 베블런의 표현을 빌리면 ‘효율성의 주의 깊은 철회’(conscientious withdrawal of efficiency)라는 것이다. … 결국 베블런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사회적 모순이 생겨나는 대립선은 자본 대 노동이라기보다는 자본 대 사회”가 된다.

* 지난 11월 24일, 딸 아이의 페구균, 뇌수막염, 로타바이러스 장염 예방접종 비용은 32만원이었다. “공동체 전체의 효율적 생산 활동”을 저해하는 지적재산권 - ‘남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권리’ - 의 깽판 놓기를 실감하였다.

: 9:15 pm: bluemosesErudition

복원성은 달리 말하면 치유력이다.

: 8:49 pm: bluemosesErudition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 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는 베스트팔렌 체제와 케인스주의에서 비롯된 ‘정의가 적용되는 범위가 근대 영토국가 내부’라는 인식이 오늘날 정의론을 위기에 빠뜨린 주범이라고 본다. 기존의 정의론이 천착했던 문제는 경제적 분배 또는 사회적 인정 등 1차원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지구화의 확대는 작금의 정의론이 가진 내용과 방법 모두에 혼란을 가져왔다. 예컨대 에이즈의 확산, 국제 테러리즘, 유전자 조작 곡물, 이주 노동자 등 영토국가의 경계를 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이전의 정의론은 더이상 보편적인 문법으로 작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정의를 확산하는 강력한 악효과까지 낳는다. 따라서 프레이저는 ‘3차원적 정의론’을 제기한다. ‘경제적 분배’와 ‘사회적 인정’을 묶고, 여기에 ‘정치적 대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representation)는 분배와 인정에 관한 투쟁들이 펼쳐지는 무대를 제공하는 장치다. 정치적 대표의 도입은 특정 대상을 배제하는 ‘대표 불능’의 부정의를 바로잡는다. 곧 분배와 인정을 위해 투쟁을 벌여야 할 자들이 공론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무대를 만드는 과정까지 민주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아무 것도 새로울 게 없는 하나마나한 소리(하버마스5, 푸코7, 아렌트8)로 점철되어 있으나, 2(9)장 - The Politics of Framing: Reframing Justice in a Globalizing World - 은 검토할만 하다.

: 3:57 am: bluemosesErudition

1. 베네수엘라에는 “2008년 현재 청소년 관현악단 120여 단체와 유소년 관현악단 60여 단체가 등록되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동네마다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있는 셈이다. 이들 오케스트라는 대부분 저소득층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에게는 무상으로 음악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기적은 1975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경제학자이자 아마추어 지휘자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이다. 그는 자신의 집 주차장에 동네 아이들 열한 명을 불러모아 놓고 악기를 하나씩 주면서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95~96)

2. “아브레우는 이러한 음악교육을 계속 확대해 왔고, 이 프로그램을 ‘엘 시스테마’라고 불렀다. ‘엘 시스테마’의 원칙은 간단하다. 악기를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아무리 어린 아이에게도 악기가 주어진다. 시스테마의 앙상블에서 연주하겠다는 아이들의 약속만 있으면 수업료, 외출비가 지급된다. 레슨은 그룹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기초를 터득한 아이들은 더 나이 어린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렇게 해서 거리에서 뒹굴던 아이들은 악기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게 되었다.”(96)

3. “‘엘 시스테마’는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25만 명의 어린이들의 음악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중 90퍼센트 이상은 저소득층 아이들이라고 한다. ‘엘 시스테마’를 만든 아브레우는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아 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사회주의 성향인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부는 연간 3천만 달러의 지원을 하고 있다. 인구 2,200만명으로 국민 1인당 연간 평균 소득이 3,500달러 이하인 베네수엘라로서는 기적 같은 일이다. ‘엘 시스테마’가 시작된 이루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범죄율은 무려 40퍼센트가 줄었으며, 많은 아이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99)

_ 김재용(2010). ‘음악을 통한 교육혁명’, <교육 통념 깨기>. 민들레. 94~101쪽.

* El Sistema(= System), 교육은 영향력을 생성-유통하는 일련의 매개(체)이다.

: 3:57 am: bluemosesErudition

1. 박성봉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대중예술의 미학을 연구하기 위해 1983년 스웨덴으로 유학을 갔다. 스웨덴의 명문대학인 웁살라 대학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전인미답의 분야를 공부했던 당시의 외로움에 대해 “아버지께서 스웨덴어 공부해서 예쁜 스웨덴 아가씨 300명의 리스트만 확보해달라는 특명 때문에 10년이나 공부할 수 있었다”고 쿨하게 농담한다. … 현재 경기대학교 다중매체영상학부 교수로 있다. 몇 년 전부터 ‘교육만이 희망이다’라는 모토로 중·고등학교 교실에서 대중예술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멀티미디어 시대에 교실로 들어온 대중예술』은 그 시발점이다.”

2. “우리는 너무 쉽게 교육의 위기와 문제점을 말하지만 대안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 대안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너무나 경직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학창시절 처음으로 인터넷 세례를 받은 세대가 선생이 되어 다시 교실로 돌아오고 있는 이 시기를 주목한다. 바로 지금 변화하고 있는 교육에 대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우리 아이가 보는 폭력성 짙은 만화, 케이블만 틀면 쏟아지는 에로틱한 장면들, 피 튀기게 싸우는 폭력 영화, 매일 흥얼거리며 열광하는 대중가요, 한번 잡았다하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게임. 이 모든 것들이 교육의 재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어떻게’인 것이다. 현재 교육에서 조금씩 활용되고 있는 영화, 게임, 음악 등을 이제 적극적으로 교육콘텐츠로 끌어와야 한다.”

3. “저자는 대중예술을 가지고 수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질문지 활용법’을 제안한다. … 학생들에게 우선 질문지를 나눠주고 한 학기에 한두 번 대답에 대한 토론 시간을 갖는다. 혹은 방학 시작 전에 나눠주고 개학 후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이 질문지 방식은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문화를 단지 보고 즐기며 소비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체험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는 일, 그것이 바로 대중예술과 관련된 질문지 수업의 진정한 목적이자 의도이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창조적인 영혼을 깨워 나가는 것이다. 이런 수업이 쌓여갈 때, 우리의 대중예술은 더욱 발전할 것이며 하급문화라는 이분법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진정한 예술로서의 대중문화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 박성봉의 조합 - 다중매체(Multi Media), 대중예술(Mass Art), 제도권 교육(Formal Education) - 은 의아하다. 다중매체(장치)에 의해 구성된 대중문화(윤리)를 “질문지 활용법”이란 방식으로 교실수업(체제)에 도입하여 대중예술을 고양시킨다? 지극히 광대한 교육에 대한 입장과 지극히 협애한 교육에 대한 접근이, 악어와 초파리의 교접 마냥 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