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2nd, 2010

December 22, 2010: 9:27 pm: bluemosesErudition

“수건 깃발은 모래바람이 불 때 집을 제대로 찾으려면 꼭 필요한 길잡이요 나침반이었다. … 깃발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위기 상황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그녀 곁에는 바이완샹이 있었고, 지금은 늙었지만 그때는 한없이 영민하던 노새도 든든한 동행으로 그녀의 길을 지켜 화를 면했다. 돌아보면 얼마나 아득한 길이었는지…. 모래 언덕의 능선과 비탈 중 그녀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이 없고, 그 발자국마다 짜디짠 눈물과 깊은 한숨이 배어 있다. 얼마나 많은 나무의 목을 바람이 분질러 놓았는지, 얼마나 많은 묘목을 모래가 삼켜 버렸는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징베이탕의 모래 언덕은 오늘날 거대한 숲이 되었다. 어느 해 봄에는 어린 나무의 무덤이 되고만 땅에서 놀랍게도 싹이 돋았다. 모래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던 생장점 하나가 기사회생한 것이었다.”(178쪽)

“중국의 메마른 사막을 숲으로 만든 여자가 있다. 척박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떠난 사막에 홀로 남은 바이완샹이라는 청년. 영문도 모른 채 이 청년에게 시집와야만 했던 인위쩐. 모래바람을 맞으며 일주일을 울던 그녀의 첫마디는 ‘여기에 꽃을 심으면 안 될까요?’였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했다. 계속된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의지가 1400만평의 사막을 푸른 숲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 9:13 pm: bluemosesErudition

“아무런 논리적 연관도 없는 두 가지 사실을 연결시키는 엉뚱한 태도를 가리키는, ‘코기토 인터룹투스(cogito interruptus)’라는 글에서 에코는 … 모든 텍스트를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학문적인 생산은 물론 일상적인 의사소통까지도 불가능해진다”고 경고하였다(강유원, 2004).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베르그송과 토론하듯이, 플라톤이 흄과 논쟁을 벌이듯이, 모든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서 철학사를 공부합니다.”(Borges, 1977[2004])

: 8:52 pm: bluemosesErudition

“브뤼겔(Breughel)의 회화작품과 칼로(Callot)의 동판화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듯이 군인은 중세 및 르네상스기 유럽에서는 증오의 대상이자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먹고 마셨을 뿐만 아니라 장교들조차 통제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은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성 상납을 포함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차지했으며, 저항하면 고문하고 살인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망나니들이었다. … 왜 그렇게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곳에서 군인들이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일까? 물론 악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미움을 받았고, 대개는 사회의 최하층 출신이었기 때문에 멸시를 받았다. 그들은 성실하게 살 수 없는 사람이거나, 부양할 수 없는 사생아의 아버지가 되거나, 도둑질 또는 강도질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정직의 범위 바깥에 내던진 자들이었다. 입대는 그들에게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탈출구를 제공했다. …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조차 사병들은 사회적 추방자였다. 허가 없이 결혼할 수도 없었고 결혼을 한다 해도 수입이 너무 적어서 아내를 부양할 수도 없었던 그들은 남부끄럽지 않은 신분에 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육군 원수가 되는 윌리엄 로버트슨(William Robertson)의 어머니는, 그가 군인이 되기 위해 공무원직을 그만두었을 때, ‘네가 군이 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죽는 것을 보겠다’고 썼다(John Keegon, 1998: 105~108).”

: 1:23 pm: bluemosesErudition

1. “알튀세르를 비롯한 프랑스 포스트모던 사상을 일본에 소개한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사상 연구가인 이마무라 히토시(今村仁司)가 쓴 『貨幣とは何だろうか』”는 “화폐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 화폐의 사회철학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 히토시는 짐멜의 『화폐의 철학』부터 괴테의 『친화력』,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 루소의 『언어 기원론에 관한 시론』까지 망라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철학적 의미의 화폐란 인간 관계에서 폭력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매개 형식이다.”

2. “주요 논의 틀인 ‘관계의 매개 형식’은 짐멜의 화폐 철학을 계승한 것이다. … 히토시는 짐멜의 입장을 바탕으로 화폐의 존재를 인간의 실존과 비교해서 봐야 한다고 말하며, 인간 고유의 관념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 관념에 주목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개념을 갖고 있지만 죽음이 눈앞에 닥치지 않은 이상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죽음을 나의 죽음처럼 느끼지 않기 위해 타자화하고 거리화한다. 히토시는 마르셀 모스가 마오리족의 증여 행위를 분석한 글을 인용하면서, 증여 행위가 인간 관계에 생과 사의 단절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남기는 증여물은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동시에 증여라는 매개 형식으로써 둘 사이에 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증여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 형식을 띠게 되었고, 그렇기에 화폐의 뿌리는 본래 죽음의 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3. “화폐라는 매개 형식의 존재 방식과 인간 존재의 유사성을 설명하기 위해 히토시는 괴테의 『친화력』과 지드의 『위폐범들』을 ‘화폐 소설’로 규정하여 논한다. 화폐 소설이란 … 관계의 안정과 질서 또는 도덕과 규칙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매개 형식’을 주제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친화력』과 『위폐범들』을 ‘매개자’에 관한 소설, 즉 화폐 소설로 보는 것이다. … 화폐와 같은 매개 형식은 각자의 욕망이 그대로 맞부딪칠 수 있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과 인간의 충돌, 인간과 자연(신)의 충돌을 방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들 소설에서는 관계의 매개 형식이나 그러한 매개 역할을 하는 인물, 소재 등이 부재할 때 발생하는 갈등이 이야기의 큰 줄기가 된다. 『친화력』에 등장하는 ‘무덤 파괴’ 이야기나 『위폐범들』에 나오는 몇몇 죄 없는 인물들의 죽음은 규칙이나 관습 같은 제도화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충돌 상태를 그린 것이다.”

4. “히토시는 화폐와 문자의 유사성을 고찰하기 위해 루소와 데리다를 인용한다. … 어떤 존재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닐 수 없고 무언가를 매개함으로써만 의미를 지닌다는 데서 화폐와 문자는 공통점을 갖는다. 자연 상태의 인간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 루소에게 아름답고 청결한 존재성은 윤리성으로 연결되고 불투명함은 오염, 불순, 죽음과 연결된다. 따라서 타자와의 관계에서 투명성과 직접성을 유지하려면 중간자와 매개자는 추방되어야 한다. 루소가 장애물이나 중간자를 혐오한 것은 이 때문이다.”

5. 히토시는 “마르크시즘의 화폐 폐기론을 국가사회주의와 조심스럽게 연결시키며, 화폐(자본)에 관한 심도 깊은 논의를 펼친 마르크스의 이론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화폐를 단순히 경제결정론의 차원에서만 바라봤다는 점에 아쉬움을 피력한다. 화폐의 폐기는 경제학적인 차원에서는 이상적일 수 있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에 결부해 생각해볼 때 하나의 매개 형식이 폐기된다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으며 그것은 중국 혁명이나 캄보디아 킬링필드 등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이미 증명되었다. … 형식으로서 화폐는 매개자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 언어, 문화 등 인간 일반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며, 인간 관계에 내재하는 폭력의 제도적 회피 장치라는 완충 역할을 한다. … 따라서 인간 사회에서 화폐는 반드시 발생하고 존속한다. 만약 화폐를 폐기한다면 인간은 곧 스스로가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히토시는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를 전거로 ”증여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 형식을 띠게 되었고, 그렇기에 화폐의 뿌리는 본래 죽음의 관념”이라 주장한다. 우활한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