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곡하나 간명하게
PSA 119:7 ESV
I will praise you with an upright heart, when I learn your righteous rules.
“저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제 소설 속에 어떤 내적인 투쟁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인간이라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그런 의문과 의심과 회의 속에서 언제나 글쓰기를 통해서 그걸 뚫고 나가보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인간을 껴안고 싶고, 그렇지만 그게 잘 안 되고, 그렇지만 더 나아가고 싶고.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되었는데 <희랍어 시간>이란 소설을 쓸 때 제가 인간을 껴안는 일에 근접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거기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가 소통하기 위해서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대화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대목을 쓸 때,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장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을 끝마치고 나서는 아주 따뜻한, 인간의 아주 환한 지점을 더듬는 그런 소설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을 했고 실제로 쓰려고 노력을 했는데 의외로 잘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왜 안 되는가를 더듬어가는 과정에서 80년 5월, 제가 어린 나이에 간접 체험했던 광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당시 제가 느낀 것은 신군부에 대한 분노라든지 증오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가, 인간은 이토록 잔인한 존재인 것인가, 그런데 그런 죽음을 무릅쓴다는 건 또 어떤 것일까? 이런 질문이 깊이 새겨졌던 사건이거든요. 그리고 그걸 계속 묻어두고 긴 시간을 지냈던 거고요. 그런데 내적인 탐색의 과정에서 ‘왜 내가 인간을 껴안기가 이토록 어려운가?’라는 질문의 끝에 80년 5월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든지 글쓰기로 뚫고 나가지 않으면 저는 이 자리에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됐고요.”(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