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29th, 2014

October 29, 2014: 1:22 pm: bluemosesErudition

“참여정부 때 교육혁신위원장을 맡으면서 내가 역점을 두고자 했던 것이 수능 등급을 완화하고 직능교육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입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수능 등급을 대폭 줄여서 아예 2등급 정도로 만들자는 것이 내 제안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당시 비서실장), 이정우(정책실장) 세 사람 빼고 나머지는 다 게거품을 물고 반대하더라. 그래서 5등급까지 양보했는데, 결국 교육부 최종 발표에서는 이것이 다시 9등급안으로 바뀌었다. 안병영 당시 교육부 장관이나 이해찬 국무총리가 9등급안을 고집했다던데, 나는 지금도 그분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직능교육 강화안 또한 예산 부족을 이유로 무산됐다.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인재 양성론에는 2300억원인가를 쓰면서 직능교육 강화에는 단돈 500억원도 쓸 수 없다더라. 참여정부에서조차 현실이 이랬다.”(전성은)

: 1:13 pm: bluemosesErudition

“집안에서 가장 힘이 센 아버지가 약자인 어머니를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교육은 없다.”

: 12:49 pm: bluemosesErudition

“나의 이전의 정식들 중 일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즉 (자본주의) 국가는 본질적인 실체로 간주될 수 없으며, ‘자본’과 마찬가지로 세력 관계이며, 보다 정확하게는 계급들과 계급 분파들 사이의 세력 관계(항상 특수한 형태로 국가 안에서 표현된다)의 물질적 응축이라고.” (165쪽)

“국가를 세력 관계의 물질적 응축으로 이해한다면, 국가를 … 전략적 장과 과정으로 파악해야만 한다. 그 결과 유동적이고 모순적인 전술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전술의 일반적인 목표 그리고 제도적 결정화는 국가 장치에서 구체화된다. 이러한 전술이 국가에 각인된다는 제한된 수준에서, 종종 대단히 명백한 전술들이 이 전략적 장을 가로지른다. 이러한 전술들은 서로 교차하고 경쟁하며, 어떤 장치를 목표로 하거나 다른 전술에 의해 단락됨으로써, 마침내 국가 ‘정치’를, 즉 국가 안에서 적대 관계를 가로지르는 전체적인 세력의 선을 그린다.” (174~175쪽)

* 니코스 풀란차스, 1978, 《국가, 권력, 사회주의》(박병영, 1994)

: 12:10 pm: bluemosesErudition

EPH 2:8-9 ESV

For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 And this is not your own doing; it is the gift of God, not a result of works, so that no one may boast.

: 2:55 am: bluemosesErudition

“내가 자주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의 마음을 더욱 새롭고 더욱 커다란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충만시켜 주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내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과 내 마음 속의 도덕법칙이 그것이다(Der bestirnte Himmel über mir, und das moralische Gesetz in mir). 나는 이 두 사물을 어둠에 둘러싸인 것으로서나 아니면 나의 시야 밖에 있는 어떤 엄청난 것으로서 찾아서도 안 되며, 단지 [막연하게] 추측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나는 그것들을 바로 나의 앞에서 바라보며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식만큼이나 직접적으로 의식한다. 전자의 것은 내가 나의 외부의 감성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서 시작하며, 나와 관계를 맺는 세계와 천체계를 무한히 크게 확장시킨다. 이것은 또 그러한 세계와 천체계의 주기적인 운동의 시작과 지속을 무한한 시간 속으로 확장시킨다. 후자의 것은 나의 보이지 않는 자아, 즉 인격성에서 시작하여 진정으로 무한한 세계 속에 있는 나를 보여주는데, 우리의 오성만이 이러한 세계를 감지할 수 있다. 나는 나와 그러한 세계와의 결합(그리고 이를 통해 모든 가시적인 세계와의 결합까지)을 전자의 경우에서처럼 그저 우연적인 관계가 아니라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관계로서 인식한다. 전자의 경우 무수히 많은 세계들을 바라보면, 하나의 동물로서 잠시 동안 생명력을 (어떻게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부여받은 뒤에, 자신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들을 (우주 속의 한 점에 불과한) 행성에게 다시 반납해야 하기에 나 자신의 가치가 소멸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에 반해 후자는 지성적 존재로서의 나의 가치를 인격성에 의해 무한히 고양시킨다. 나의 인격성 속에 있는 도덕법칙은 동물성으로부터, 아니 더 나아가 모든 감성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있는 삶을 내게 드러내 준다. 나 자신의 삶이 그 도덕법칙으로 인하여 현세의 삶이 가지는 제약과 한계에 제한되지 않고 무한히 지속되어 나아가도록 합목적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볼 때, 최소한 그렇게 추측할 수는 있는 것이다.”

_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1788), IV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