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하게도 사교육 대책을 총괄하는 교육부는 자치구별 사교육비 통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매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내는 신한은행 빅데이터 센터가 분석한 서울 지역 25개 자치구별 사교육비 지출 현황을 보면 양천구가 58만원으로 1등이었다. 노원구 53만원, 서초구 52만원, 송파구 51만원, 강남구 48만원이 뒤를 이었다. 수능 고득점자 비율 1∼5위가 모두 사교육비 지출 1∼5위 안에 들어가 있다.”
“한심하게도 사교육 대책을 총괄하는 교육부는 자치구별 사교육비 통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매년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를 내는 신한은행 빅데이터 센터가 분석한 서울 지역 25개 자치구별 사교육비 지출 현황을 보면 양천구가 58만원으로 1등이었다. 노원구 53만원, 서초구 52만원, 송파구 51만원, 강남구 48만원이 뒤를 이었다. 수능 고득점자 비율 1∼5위가 모두 사교육비 지출 1∼5위 안에 들어가 있다.”
E. H. Carr. “흡사 신과 같은 초연함에도 불구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세계를 다루는 데에는 실패했던 인간, 믿음의 확고한 기초를 공포스러운 거대한 힘, 즉 제1차 세계대전의 도래로 인해 궤도 밖으로 던져진 한 인간, 자신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언제나 지성만으로는 살 수 없었던 한 인간.”
“하이델베르크의 라인하르트 메링(Reinhard Mehring)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사상과 정치적 행동을 해석하기 위한 하나의 관점으로 자신이 고안한 ‘유고정책(Nachlasspolitik)’에 주목해왔다. 라인하르트는 하이데거가 “민족사회주의 시기에 자신이 겪은 정치적 좌절을 뒤로하고, (새롭게 상정되는 독자들의) 행선지를 의도적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이데거는 자신의 작품을 자기 손으로 직접 ‘후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자신의 사상을 독자들에게 직접 마케팅하는 일을 자신의 중심 활동으로 삼게 된 것이다. 하이데거는 1930년대의 정치적 좌절 이후, 사상가로서의 자기 인생을 재구축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이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정치적 비판을 피하고, 자신의 사상을 담은 작품과 편집 활동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져, 온전하게 후세에 전달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런 모습은 하이데거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사상가 스스로가 자신의 저작이나 작품이 후세에 어떤 취급과 평가를 받게 될지 염두에 두고 글을 작성하고 편집하는 모든 행위 전략의 총체를 라인하르트 메링은 ‘유고정책’이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_ 후카이 토모아키, <사상으로서의 편집자 - 현대 독일 프로테스탄티즘과 출판의 역사>, 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