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당시의 위기는 인간의 행동과 무대책의 결과이지, 천재지변이나 컴퓨터 모델 문제가 아니다. 셰익스피어를 인용하자면 잘못은 저 별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The Financial Crisis Inquiry Commission United States of America, 2011: 525)

21. 신뢰의 측면에서 인간의 역사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지역적 신뢰(local trust)의 시대로, 모두가 서로를 아는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서 살던 시대다. 두 번째는 제도적 신뢰(institutional trust)로, 신뢰가 계약과 법정과 상표 형태로 작동해서 지역 공동체 안의 교환을 벗어나 조직화된 산업사회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가 구축된 일종의 중개인 신뢰의 시대다. 세 번째는 분산적 신뢰(distributed trust)의 시대로, 우리는 아직 그 시대의 초기 단계를 지나고 있는데 불과하다.

48. 관시 중심의 중국 사회에서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유형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관시 전통이 지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둘째치고라도 알리바바가 설립될 당시 중국의 인터넷 이용자는 전체 인구의 1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그중 인터넷으로 물건을 구입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전자상거래는커녕 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낯선 시절이었다. 전자상거래를 이용한 경험이 전무하고, 온라인 결제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물건을 빠르고 안전하게 배송할 수단도 없었다. 알리바바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신뢰 문제를 해결했을까?

49~50. 마윈은 이렇게 말했다.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결제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은행에 문의했습니다. 어느 한 곳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은행들이 ‘안 됩니다. 그런 건 절대 안 될 겁니다’라고 말하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 2004년 알리바바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를 출시했다. 페이팔 같은 직접 결제 방식이 아니라 알리페이에서 구매자에게 돈을 받아 에스크로 계정(두 거래 당사자 대신 제3자에게 돈을 예치하는 펀드)에 돈을 예치했다. 판매자가 물건을 보내면 구매자가 물건을 확인하고 만족한다고 확인해야 에스크로 계정에 묶인 돈이 풀리는 방식이었다. 이로써 결제와 관련된 불확실성을 간단히 줄일 수 있었다.

50~51. 결제 시스템은 그렇다고 해도 마윈은 온라인상에 존재하는 미지의 중소업체나 개인 판매자를 대중이 신뢰할지 어떻게 알았을까? … 그 답은 알리바바에서 2001년 시작한 트러스트패스(TrustPass)라는 서비스에서 찾을 수 있다. 판매자가 트러스트패스 인증을 받으려면 제3자의 신분증명서와 은행 계정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알리바바는 판매자들이 공식 업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도록 브랜드를 만들고 가상의 매장 진열대를 꾸미는 작업을 지원했다.

108. 블라블라카(BlaBlaCar)를 예로 들어서 신뢰 더미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자. 첫 번째 단계에서는 차량 공유 개념이 안전하고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해와 확신이 충분히 쌓이거나 불확실성이 감소해서 새로운 개념을 시도해보고 싶어야 한다. 다음으로 플랫폼과 회사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블라블라카의 경우, 이용자가 차량에 탑승하기 전에 회사에서 나쁜 사과를 골라내고 문제가 생기면 고객이 도와줄 거라는 인식이 형성됐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다양한 정보를 참조해서 상대가 믿을 대상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실제로 신뢰가 형성되는 마지막 단계다. 하지만 앞의 두 단계를 거치지 않고 마지막 단계에 이를 수 없다.

155~156. 에어비앤비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개발한 ‘방어 장치’ … 예를 들어, 2011년 한 호스트가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를 빌려줬다가 집이 난장판이 된 ‘EJ 사건’을 계기로 에어비앤비는 재산 피해에 대해 예약 1건당 최대 100만 달러를 보상해주는 ‘호스트 보장’ 제도를 도입했다. 2013년에는 ‘에어비앤비 검증 ID’ 제도를 도입해 개인의 온라인 ID가 그 사람의 운전면허나 여권 같은 오프라인의 개인정보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마련했다. 에어비앤비는 블로그에 이 제도의 도입을 공지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신뢰성 있는 공동체에는 익명성이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신뢰와 검증, 이 둘은 함께 갑니다.”(155~156)

238. 전자 상거래는 물론이고 다크넷에서도 평판이 전부다.

_ 레이첼 보츠먼, <신뢰 이동>, 흐름출판,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