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아빠”가 되었다.
소외되지 않는 학습(praxis)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공민사회에 관한 고찰이 선행돼야 한다.
가다머가 제시한 ‘변증법적 윤리’(dialektische Ethik)는 “대화와 프로네시스의 지평융합”을 통해 “‘이론적 과제와 실천적 과제로서의 해석학’(Hermeneutik als theoretische und praktische Aifgabe)의 정신을 가장 탁월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사상적 기초”이다.
“실용주의적인 지식이란 현실에 순응해서 돈벌이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한 한계에 도전하면서,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창조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실용주의자에게 “진보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을 구현하는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극복해 나가는 실천의 문제이다.” … “대학이 실용주의적인 지식인을 키우고자 한다면, 단편적인 지식이나 기능을 숙달한 직업적 전문가를 키울 것이 아니라, 폭넓은 교양을 갖추고 문제해결 능력을 습득한 실천적인 지혜를 갖춘 전목적적인(all purpose) 지식인을 길러 내야 할 것이다.”
Against Discourse without Subject
“비판자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의혹은 ‘프로그램 분석의 환원주의’(Programmanalytische Reduktionismen)다(Kessl, 2007: 216). 이들에 따르면 통치성 연구는 - ‘핵심적인 (정부) 문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 ‘담론적 통치성’(discursive governmentality)에 경도되어 있어 자칫 담론, 합리성, 프로그램, 혹은 전략이나 테크놀로지로의 기계적인 환원주의에 빠지기 쉽다.”
“자기계발의 실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자유주의적 통치권력이 행사되는지, 자기계발 수행자들에게 실제로 자기계발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떠한 아노말리, 혼란(Irritationen, Niklas Luhmann), 혹은 ‘저항의 잠재력’이 발생할 수 있는지는 그다지 해명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자 측면의 문제들에 대한 해명이 없다면 자유주의적 자기계발에 대한 분석은 구체적인 대안을 낳을 수 없는 공허한 비판에 그치게 될 것이다.”
“본 연구는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담론으로서의 통치성과 대조되는 통치성의 ‘실재’ 형태를 탐구하는 것이다(McKee 2009; Stenson 2005, 2008). 이는 민속지(ethnography)의 방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통치 및 자기계발 프로그램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그것의 물질적인 효과는 어떤지, 그것의 예견되지 않고 의도치 않은 결과들과 한계는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즉 실제의 자기계발이 취하는 매우 복잡하고 모순적인 형태를 탐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계발의 실재 형태가 가지는 복잡성과 모순성의 한 양태로서 그것이 수행하는 문화적 기능의 이중성을 살피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한계 비판: 개념설명(what)에 국한 / 학습 메커니즘(how)의 부재
“물론 일상적인 사건에 대해선 그들이 매일 신문을 읽기에 나보다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점에서, 그들이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문서들을 내가 20년 이상 연구했다.”(인터뷰 전문)
“사물의 외양과 본질이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과학은 모두 불필요할 것이다.”(Marx, K.) 본격적인 탐구에 앞서 무엇보다 교육사회학적 연구방법론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