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3rd, 2010

January 23, 2010: 11:59 pm: bluemosesErudition

“The majority is deeply wrong on the law. Most wrongheaded of all is its insistence that corporations are just like people and entitled to the same First Amendment rights. It is an odd claim since companies are creations of the state that exist to make money. They are given special privileges, including different tax rates, to do just that. It was a fundamental misreading of the Constitution to say that these artificial legal constructs have the same right to spend money on politics as ordinary Americans have to speak out in support of a candidate.” “Now a similar conservative majority has distorted the political system to ensure that Republican candidates will be at an enormous advantage in future elections.”

: 7:26 pm: bluemosesErudition

모세를 기억하자. 내게 진정 ‘믿음’이 있는가(출4:13). 나는 진정 ‘낮은’ 아니 ‘온유한’ 자인가(민1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2~3)

: 4:32 am: bluemosesErudition

1. 광야학교가 개강했다. 여태껏 광야학교의 여정이 ‘자아의 경건’을 중시했다면, 지금부터는 ‘공동체 영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 수료 과제는 존재 자체로서의 안전감과 중요감, 즉 ‘자존감’의 체화이다. 자아에서 은송림으로 “마음의 레짐”(The Regime of Heart)을 변혁하지 못한다면,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유급이다: 1)있는 모습 그대로 타인을 존중할 수 없고, 2)결여가 충족될 때까지 타인을 섬길 수 없다. 그렇다. 나는 교만한 짐승이었다.

2. “베이트슨은 이 대조를 꼭대기가 있는 산과 높고도 평평한 고원(高原)의 비유를 들어 분명히 했다. ‘아이가 발리의 삶에 보다 충만하게 적응함에 따라, 연속적인 강렬함의 고원이 꼭짓점(절정)을 대체한다.’ 그러니까 발리의 문화양식은 마음과 신체가 고원 상태를 형성하도록 습관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즐거움이 짧게 왔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쾌감’이 아니라 길고 강렬하게 유지되는 ‘쾌활함’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것은 외부의 쾌락적 자극을 장시간 유지시킨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습관을 통해 마음과 신체의 경향 자체를 변화시키고 그에 맞게 환경을 새롭게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신들의 주저 <천 개의 고원>의 제목을 여기에서 가져왔다. … 베이트슨은 자신의 책 제목을 <마음의 생태학을 향하여(Steps to an Ecology of Mind)>라고 붙였다. 이 제목은 흥미롭다. 생태학은 원래 생물과 환경의 상호관계를 다루는 학문인데, 인간의 마음에 그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의 생태학’을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