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분은 오직 개인이 나타내는 것과 또 그가 그것을 나타내는 방식을 볼 뿐이다. 그것은 꼭 무대에서와 같다. 그러나 막이 내리면, 왕을 연기한 자와 거지를 연기한 자 등등은 모두 같다. 모두 똑같은 배우들이다. 죽음에 이르러서 현실이라는 무대의 막이 내릴 때 … 그럴 때 그들은, 또한, 모두 하나이며, 그들은 인간들이다.” “오호라, 현실의 삶에서 우리는 차이점이라는 겉에 입은 외투를 너무 단단히 여미고, 그 결과 그 외투가, 평등성이라는 내면의 영광이 지속적으로 바깥에까지 빛나야 하는 데도 결코 빛나지 않거나 또는 아주 드물게 빛나기 때문에, 자신은 겉에 입은 외투라는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151~152)
2. “키르케고르는 죽음이 인간의 연극을 끝장낼 때, 시간의 막이 내려오고 영원의 진정한 삶이 베일을 벗을 때, 그때 우리는 우리가, 벌거벗은 진리 안에서, 보이는 그대로, 우리 모두 하느님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본질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157) “영원한 삶에 의해 성취되는 수평화는 우리의 가장 고귀한 공통분모, 하느님 앞에서의 각 개인의 감할 수 없는 존엄성을 가리킨다. 대중에 의해 초래된 균질적 평준화에 대한 키르케고르의 경멸은 훨씬 심오한 또는 훨씬 고귀한 평준화와는 구별되어야 하거니와, 여기에서는 우리의 외부 환경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우리 각자이고, 단독으로 취해졌으며,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 하느님 앞에서.”(154) “키르케고르는 기본적으로 ‘차별적 사랑’과 ‘명령받은 사랑’을 구분한다.”(158)
*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마가복음 9:50) _ 이웃사랑의 방안은 우리 가운데 소금을 쳐 두는 것이다. 키르케고르가 암시하는 ‘절망의 도약’은 길이 아니다. 빛의 성향(dispositivo)을 자아내는 소금이라는 장치(dispositif)에 관해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