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17th, 2011

October 17, 2011: 10:34 pm: bluemosesErudition

1.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시고, 바울을 안전하게 호송하려는 계획을 실행시키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면, 누구도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하나님의 뜻 안에 살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행 23:16~30)

2. 대중은 진실이 아닌 대세를 따른다. 사람의 평판이 아닌 하나님 임재를 의식하며 온전하게 - 순결하고(진정성) 지혜롭게(속물성) - 지금 여기서 주의 영광을 위해 살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 2:30 am: bluemosesErudition

1. 추정컨대, 보디발의 분노는 요셉이 아닌 자신의 아내를 향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파렴치한 종을 즉결처분 하지 않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으로 보냈겠는가. 여기에 섭리가 깃들어 있다. 하나님은 인생을 단련시켜 악을 선으로 갚으신다. 왕의 죄수들은, 요셉에게 애굽의 정세를 전수할 최적의 교사라 할 수 있다. 그곳은 예비된 총리 양성소였다.

2. 신앙이란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부단한 섬김의 훈련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여 온전한 섬김을 구현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뤄나가는 실천이다. 학업에의 열망은 어쩌면 일상의 성화를 만홀히 여기는 미숙한 몽상일지 모른다. 정처없는 일신의 욕구에 매몰되어 공동체의 필요를 등한시하는 자가 ‘성화’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3. “금식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근본적이지 않은 것들을 우리의 삶에서 우위에 놓는 일을 시작하기가 대단히 쉽다.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갈망하다가 결국은 그것들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 금식은 그 갈구와 욕망이 올바른 길로 흐르도록 돕는다.”(Richard Foster, 1998[2009]: 106) 

4. 금식하자. 그리하여 사랑의 대상을 내가 아닌 하나님과 이웃으로 정하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7)

* “요셉이 감옥에 갇혔으나,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아주시고,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셔서, 간수장의 눈에 들게 하셨다.”(창 39:21)

: 1:30 am: bluemosesErudition

1. “1930년대 후반 파리에 망명하면서 <파사젠베르크>를 준비하던 벤야민은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 그의 작업은, 1927년 그가 파리에 머물던 시기에 초현실주의자 루이 아라공의 소설 <파리의 농부>를 읽고 열광하면서 처음으로 착상되었다. 당시에는 작은 규모의 문학에세이 형식으로 파리의 파사주(passage)를 다룰 요량이었다. 그런데 이 기획이 1929년에 갑자기 중단되고 맑스의 텍스트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난 1930년대 초반 이후, 프로젝트의 범위가 대규모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그는 1930년대의 눈으로 다시 바라본 프랑스 제2제정기(1852~1870)의 파리를 좀 더 총체적으로 포괄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이후 약 10여년에 걸쳐 그를 괴롭힌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상황의 악화 속에서 벤야민의 생명을 유지시켜준 유일한 희망의 끈이 바로 파사주 프로젝트였다. 마침내 그가 1940년에 포르투갈로 도피의 길을 떠날 때, 그는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인용과 주석으로 구성된 원고뭉치를 당시 파리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있던 바타이유에게 위탁한다. 이어 벤야민의 불운한 자살 이후, 피에르 미삭(Pierre Missac)의 주도와 바타이유의 협조로 간신히 다시 발견된 이 원고는 1947년 경 뉴욕에 있던 아도르노에게 건네졌고, 약 30여년이 흐른 1982년에 (2책으로 나뉘어) 전집의 5권으로 출판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현재의 판본에는 두 편의 개요(exposé)와 초창기의 초고들 그리고 책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른여섯 개의 묶음(Konvolut)으로 구성된 ‘노트와 자료들’이 들어 있다.”

2. “약 13년에 걸쳐 진행되어 결국 마무리되지 못한 이 방대한 작업을 통해 벤야민이 기획한 것은 무엇일까? … 방법론적 성찰을 집중적으로 수행한 묶음 N을 제외하면 특히 1939년에 불어로 씌여진 초고의 서론이 주목할 만하다. 거기에서 벤야민은 판타스마고리아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우며 이를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기조음으로 설정한다. 원래 ‘판타스마고리아’는 맑스의 <자본>에 등장하는 다음 구절에 기원을 둔다(Marx, 1867[1989]: 92). ‘인간의 눈에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라는 환상적인 형태(die phantasmagorische Form)로 나타나지만 그것은 사실상 인간들 사이의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 요컨대 <파사젠베르크>는 20세기의 각성된 눈으로 19세기가 꾼 꿈(Traum)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은 19세기가 한편으로는 사적 개인을 발명하여 내면적이고 성찰적인 개인주의로의 지향을 보여주었지만, 그와 동시에 판타스마고리아에 빠진 집합체, 즉 ‘꿈꾸는 집단(das träumende Kollektiv)’ 또한 만들어내었음을 정확하게 통찰한다. 봉건적 질서로부터 해방되어 탈마법화되고 합리화된 세기로 19세기를 이해할 때, 우리는 그런 이성의 시대로부터 어떻게 20세기의 야만성이 도출되었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무기력하다. 하지만 벤야민이 보는 19세기는 합리성의 세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신화, 꿈, 판타스마고리아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 1:01 am: bluemosesErudition

“이 논문은 휴대전화가 변화시킨 우리의 사회적 삶의 다양한 모습들 중에서 특히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인간의 체험구조의 변화상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이론적으로 탐색하려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서 휴대전화의 사물성에 대한 현상학적 탐구를 시도하여. 그것이 언제나 사용자의 ‘손’에 부착되어 있는 일종의 보철이자, 사용자의 신체를 재구성하는 하나의 장치임을 보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 휴대전화가 사용자의 체험을 특수한 방식으로 구조화하는 경향을 첫째, 산만한 지각 환경이 유도하는 체험의 파편화의 경향과 둘째, 휴대전화 사용에 동반되는 가상 피막의 형성이 야기하는 모나드화임을 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주체성을 소위 후기근대의 ‘성찰적 개인’과 연관시킴으로써 모바일 테크놀로지가 형성하는 ‘모바일 성찰성’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탐색한다.”(김홍중, 2011. 5)

: 12:53 am: bluemosesErudition

“나라는 것은 집합적 마음의 레짐(체제)을 통해 만들어지는 하나의 주체”이다. 어느 89학번의 “그 분노는 개별 마음 속에서 솟아나기 전에 대자보 구호 속에, 화염병의 난무 속에, 파업이나 휴업 결의 속에, 술자리에, 탈춤을 추고 죽창을 휘두르는 판화의 영상들 속에, 민중가요를 부르는 목소리들 속에, 분신하는 몸뚱이의 충격적인 몸부림과 이를 지켜보는 경악의 눈동자들 속에 이미 먼저 현실로, 물질로, 상징으로, 힘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생물학적 생존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속물적이지만, 그것이 집합행동으로 나타날 때에는 진정성으로만 달성하기 어려운 사회변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것(진정성)이 사회변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속물성과 만나야 한다.”

: 12:15 am: bluemosesErudition

1. “개인과 합리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 … 어찌 보면 이것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등등의 사회 과학이 발달하게 된 가장 중요한 동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특히 197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등등의 실체가 도대체 무어냐는 대단히 공격적인 질문이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강력한 답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못했다. 그러자 경제학적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이기심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행동으로 그런 것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한발 더 나아간 자세를 취한다. 여기에서 합리적 이해타산에 몰두하는 개인들의 이합집산을 설명하는 게임이론은 강력한 무기가 된다. 비록 화폐와 재화가 오고가는 것은 아니더라도 정치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개인적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하는 개인들이 빚어내는 결과임은 동일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굳이 경제학과 독립된 사회 과학의 영역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경제학과 동일한 방법으로 통일해나가는 것이 과학적 사회과학을 위하여 마땅히 나아갈 길이라는 것이다. 특히 소위 신제도주의경제학(new institutional economics)이 출현하면서 인간 사회의 모든 제도들을 다 이기적 개인들의 행동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접근이 성행하게 되자 경제학은 모든 사회 과학 분야 일반으로 영역을 확장하게 되고, 전통적인 사회 과학의 영역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된다. 소위 “경제학 제국주의”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2. “경제학은 그 기원에 있어서 윤리학에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초기 근대 유럽에서 경제학의 모태가 되었던 학문은 프로이센의 경우는 국가경영학(Staatswisenschaft)이었지만 프랑스나 영국의 경우에는 도덕철학(moral philosophy)이었다. 잘 알려진 대로, 애덤 스미스 그리고 그의 스승이었던 후치슨(Francis Hutcheson)은 모두 도덕철학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들이었다. … 윤리와 도덕의 문제는 지금도 이 학문의 가장 중요한 기둥을 이루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까지도 주류 경제학의 모든 명제는 ‘당위’인지 ‘현실’인지가 뒤섞여 있다는 데에 있다.”

3. “애덤 스미스는 결코 탐욕이나 개인적 이기심을 인간의 유일한 ‘본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이러한 태도를 정당화하면서 스미스를 들이대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많은 이들이 지적해왔지만, 사실 스미스에게 죄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가 선택한 ‘자연법’이라는 이야기 방식에 문제의 근원이 있기 때문이다. 뮈르달(Gunnar Myrdal)이 젊은 시절에 이미 강력하게 제기한 바가 있지만, 이 이야기 방식의 문제는 ‘당위’와 ‘현실’을 항상 헷갈리고 애매하게 만든다는 것에 있다.”

4. “스미스는 맨더빌의 논지를 발전시켜서 인간의 이기심을 인간 성정(性情)의 자연스런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오히려 사회의 조화를 가져오는 메커니즘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였지만, 그가 선택한 논리 전개의 방식은 ‘자연법’에의 호소라는, 맨더빌보다 훨씬 심오한 관점이었다. 개별자의 이기심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전체의 조화가 창출된다는 것은, 인간 사회만이 아니라 그것을 포괄하는 우주와 자연 전체에 편재하는 보편적인 자연의 원리라는 것이었다. 이는 도덕철학자로서의 스미스의 오랜 사색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5. “호혜성이니 함께 사는 경제니 하는 말들은 좋은 정신을 담고 있는 소중한 말들이지만, 막상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제도나 조직 형태 또 규칙 등을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모두 다 느낄 수 있는 바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생활협동조합에서 회원들끼리의 상호신용금고와 같은 금융기관을 만든다면 정관을 어떻게 해야 하고 대출 행태는 어떻게 해야 할까?어떤 점에서는 시중 은행과 비슷해야 하고 어떤 점에서는 달라야 할까? 여기에서 어떤 식으로 ‘게임’을 설계해야 모두 최대의 혜택을 보면서도 또 협력과 상생의 정신을 더 강화하여 조직 전체의 인간적 단결을 도모할 수 있을까? 이러한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을 때에 정태인이 제시한 방향의 연구는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6. “베블런은 사람들이 서로 ‘나도 살고 너도 살고(live and let live)’라는 정신에 입각하여 공동체 전체의 물질적 복리를 불리고자 하는 제작자 본능(workmanship)이 있다고 보았고 그것이 발현된 활동을 산업(industry)이라고 부른 바 있다. 그리고 자기가 일하기보다는 남의 일한 것을 빼앗아오는 수탈자 본능(predatory instinct) 혹은 불한당 근성(sportsmanship) 또한 있다고 보아 여기에서 나타난 활동의 역사적 형태의 하나로서 영리활동(business)을 정의한 바 있다. 베블런이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이든 신고전파이론이든 소위 ‘생산성’이라는 것을 상정하여 그것을 노동이든 자본이든 개개의 생산 요소에 돌리는 것은 모두 미신이라고 보았다. 진정한 생산성이 있다면, 이는 사회 성원들 모두가 서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 전체의 지식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리 활동’은 이러한 공동체 전체의 믿음과 이해에 기초한 산업을 지배하여 그것을 가져오는 것으로 이윤의 근원을 삼을 뿐만 아니라, 이윤에 도움이 된다면 그러한 산업 활동 자체를 깽판놓는(sabotage) 행동을 아예 중심 원리로 삼아버린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동력을 생산성 향상을 통한 자본 축적으로 생각했던 마르크스와 달리, 베블런은 자본주의가 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복리를 제한하는 본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으며, 여기에서 사회적 생산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자들끼리 서로 돕는 민주주의적 질서를 강화하여 영리활동의 ‘비생산성’을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7. 자연법의 외양을 갖추고 당위와 현실의 경계에서 사회의 윤리를 주조하는,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