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12th, 2014

November 12, 2014: 11:25 pm: bluemosesErudition

“제가 40대에 쓰고 싶은 소설이 세 편 정도 있어요. 40대에 쓰고 싶다는 건 취재할 힘이 남아 있고, 부지런히 답사를 많이 할 수 있고, 노안이 오기 전에 자료들을 많이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런 답사와 자료 조사가 되어야지만 쓸 수 있는 것들이에요. 제가 교수를 그만두면서 그런 소설 세 편 정도를 50살이 되기 전까지 꼭 세 편을 쓰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왔었고요. 그 첫 작품이 작년에 냈던 <밀림무정>이라는 인간과 자연이 대결하는 소설이었고, 지금 두 번째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괴테와의 대화>라는 책인데요. 이건 제가 교수생활 할 때, 1학년들한테 무조건 학생들한테 읽혀요. 이건 에커만이라고 하는 젊은이가 노년의 괴테를 천 번 정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모아놓은 인터뷰 집이에요. 항상 제가 학생들한테 이야기할 때는 천 번은 너무 많으니까 니가 만들고 싶은 인물을 백 번만 만나보라고 해요. 제가 학생들한테 일기를 쓰게 하거든요. 한 인물에 대해서 매일 백 일 동안 일기를 쓰는 거죠. 가상 인터뷰를 하라는 거예요. 그 인물에 대해서 백 번쯤 생각하면 그 인물이 자기가 자기를 아는 것보다 내가 그 인물을 더 많이 알게 되는 그런 경지까지 가는 거죠.”

_ 김탁환, 2011. 4. 11.

: 10:44 pm: bluemosesErudition

“사회구성체 논쟁과 변혁론 논쟁은 1980-83년의 준비기, 1984-85년의 1단계 논쟁(C-N-P), 1986-87년의 2단계 논쟁(NL-CA), 1988-90년의 3단계 논쟁(NL-PD)으로 변화 발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 10:14 pm: bluemosesErudition

1770년 무렵부터 중국 소재 외국 상관과 영사관 등에서 [중국 상인과의 거래 중개를 맡기기 위하여] 고용하였던 중국 사람

: 12:29 pm: bluemosesErudition

1CH 29:10-19 ESV

Therefore David blessed the Lord in the presence of all the assembly. And David said: “Blessed are you, O Lord , the God of Israel our father, forever and ever. Yours, O Lord, is the greatness and the power and the glory and the victory and the majesty, for all that is in the heavens and in the earth is yours. Yours is the kingdom, O Lord, and you are exalted as head above all. Both riches and honor come from you, and you rule over all. In your hand are power and might, and in your hand it is to make great and to give strength to all. And now we thank you, our God, and praise your glorious name. But who am I, and what is my people, that we should be able thus to offer willingly? For all things come from you, and of your own have we given you. For we are strangers before you and sojourners, as all our fathers were. Our days on the earth are like a shadow, and there is no abiding. O Lord our God, all this abundance that we have provided for building you a house for your holy name comes from your hand and is all your own. I know, my God, that you test the heart and have pleasure in uprightness. In the uprightness of my heart I have freely offered all these things, and now I have seen your people, who are present here, offering freely and joyously to you. O Lord,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Israel, our fathers, keep forever such purposes and thoughts in the hearts of your people, and direct their hearts toward you. Grant to Solomon my son a whole heart that he may keep your commandments, your testimonies, and your statutes, performing all, and that he may build the palace for which I have made provision.”

: 4:39 am: bluemosesErudition

“이제부터 홉스의 정치론을 이야기해 보죠. 먼저 염두에 둘 것은 홉스가 갈릴레이의 자연철학(물리학)적 관점을 유물론적 세계관으로 확대,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그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물체(body) 밖에 없고 이것을 지배하는 원리는 운동(motion)입니다. 돌이나 나무, 공이나 비행기를 우리는 물체라고 부릅니다. 사람이나 동물도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물체이고, 의지가 개입된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예컨대 공이 날아가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홉스에 따르면 ‘국가’라는 것도 인공적으로 만든 거대한 물체입니다. 따라서 운동의 원리는 돌이나 비행기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도 적용된다고 본 것이죠. 이것을 홉스는 매우 일관되게 그리고 철저하게 적용합니다.” ”근대 물리학자들은 운동을 두 가지의 힘, 즉 당기는 힘인 인력과 밀어내는 힘인 척력으로 설명합니다. 홉스는 이 원리를 인간과 사회를 설명하는 데 적용합니다. 존재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을 욕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기피하는 것, 이 두 가지 정서 사이에서 인간의 구체적인 행동이 생긴다는 것이죠. 욕망과 기피 또는 희망과 두려움, 이 두 가지 정서가 인간을 지배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운동의 추동력일까요? 홉스는 이것을 ‘endeavour’(라틴어 conatus)라고 불렀습니다. ‘노력’, ‘추구’, ‘욕구’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죠. 물리학에서 관성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죠. 이러한 경향을 스피노자는 홉스와 비슷하게 “현재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경향)”이라고 불렀습니다. 요컨대 지극히 작은 소립자에서 천체에 이르기까지, 아메바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는 존재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고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홉스는 물체, 인간, 사회를 이 ‘자기 보존’의 원리에서 보자고 제안하죠. 이 점에서 스피노자는 홉스의 후예였습니다. 인간은 지성과 의지를 가졌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되지만 이것조차도 결국은 자기 보존 욕구라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 원리를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면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운동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자리(토포스)를 갖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연기의 자리가 하늘이기 때문이고, 돌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돌의 자리가 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운동은 모두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고향에 머무는 것, 곧 정지 상태에 있는 것이 운동보다 훨씬 가치 있고, 모든 존재물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적(텔로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은 궁극적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불행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고백록> 1권 1장에서 그는 “당신께 이르도록 우리를 지으셨기에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불안합니다”(quia fecisti ad te et inquietum est cor nostrum, donec requiescat in te)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텔로스, 즉 우리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 지점은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지상의 삶은 이런 의미에서 궁극적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끊임없는 운동입니다. 하나님께 이르러(ad te), 하나님 안에서(in te) 쉼을 얻을 때 비로서 안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홉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삶은 운동이다(Life is motion).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의 욕망에 덧붙여 또다른 욕망을 갖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근대적 사고입니다. 그칠 줄 모르는 운동, 끊임없는 진보, 이것이 근대 문화를 만들어 놓았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_ 강영안,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