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7th, 2014

November 7, 2014: 9:48 pm: bluemosesErudition

“일본 철학자들이 서양 철학의 견습생으로 그치지 않고서 자신들의 철학 전통을 만들어낸 것은 암흑기인 쇼와 전기(1925~1945)이다. 특히 니시다 기타로, 와쓰지 데쓰로, 미키 기요시, 구키 슈조는 이른바 ‘교토 사철(四哲)’로 불리는 거장들이다. 교토 큰 서점의 철학 코너에 가면 이들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일본 철학자들은 각자의 전공에 상관없이 이들의 사유를 연구하거나 최소한 언급하곤 한다. 요컨대 니시다 기타로와 교토 사철은 현대 일본 철학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니시다 철학의 주제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참조해 말한다면 ‘고뇌를 넘어 환희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니시다는 “철학의 동기는 비애의식(悲哀意識)이다”라고 여러 차례 말한 바 있다. … 니시다는 그의 삶에서 많은 죽음들을 목격했다. 여린 소년 시절에 각별히 사랑하던 누나의 죽음을 경험했고, 후에는 그의 삶의 대들보였던 어머니의 죽음은 물론 세 명의 자녀들(장남과 차녀, 오녀)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으니(여기에 처와 사녀는 밤낮 침상에 누워 지내는 병자였다), 이런 사람이 비애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겠다. 게다가 니시다는 사회생활에서도 기구해서 갖가지 부조리와 차별, 냉대, 서러움을 겪기도 했다. 인생 후기의 교토대학 교수 시절은 그나마 비교적 평온했지만, 그의 삶은 고뇌와 비애의 연속이었다. 니시다는 자신의 생에 찾아온 이런 시련들을 철학으로 극복하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니시다 철학’이 탄생했다.”

_ 이정우, 2012. 1. 20.

: 9:11 pm: bluemosesErudition

“이 소설의 원제목은 ‘아니말 트리스테(animal triste)’다. 독일 작가의 독일 소설이지만 이 단어들은 라틴어다. 나는 라틴어를 모르지만 이 두 단어가 들어있는 오래된 관용구 하나를 알고 있다. ‘옴네 아니말 트리스테 포스트 코이툼(omne animal triste post coitum)’. 즉, ‘모든 짐승은 교미를 끝낸 후에는 슬프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풋내기 수도사 아드소는 야생적인 소녀와의 첫 경험 이후 “욕망의 허망함과 갈증의 사악함”을 최초로 실감하면서 저 관용구를 상기한다.)”

“나는 사랑이 안으로 침입하는 것인지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인지조차도 아직 알지 못한다.”

“1년 전 일이니 분명히 기억난다. 고작 20쪽 남짓인 이 첫 챕터를 나는 몇 번에 걸쳐 쉬어가며 읽어야 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쪽을 다 읽고 나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늘 기다리고 찾고 꿈꾸는 그런 종류의 소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딘가에도 썼지만, ‘자신에게 전부인 하나를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는 당해내질 못한다.”

“모니카 마론은 주인공 그녀의 형상 속에 2차대전 이후 동독에서의 삶이 한 여자에게 미친 불행한 영향들을 섬세하게 새겨 넣었고, 독일의 분단과 통일이라는 역사적 격변이 개인의 삶에 가져온 엇갈림과 비틀림을 그녀 주위의 다른 인물들을 통해 포착해 내면서, 이 소설이 그리는 사랑의 사건을 역사의 사건으로 끌어올린다. 우리 내면의 모든 것이 역사라는 변수에 종속돼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소설이 한 개인의 삶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얼마나 더 깊어질 수 있는지를 이 소설은 탄식이 나오도록 입증한다.”

“한편으로는 지독한 사랑과 참혹한 애도의 서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섬세한 스케치인 이 소설을 모니카 마론은 최상의 산문 문장으로 끌고 나간다. 최상의 산문 문장은 고통도 적확하게 묘파되면 달콤해진다는 것을 입증하는 문장이다. 달콤한 고통이 무엇인지를 꿈과 잠의 주체인 우리는 안다. 꿈과 잠에 비유해 본다면, 그녀의 문장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탈진한 상태로 깨어나서는 한참을 더 울게 되는 그런 꿈이고, 탈진한 상태로 깨어나서 한참을 더 울다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그 슬픔이 달콤한 안도감으로 서서히 바뀌는 것을 느끼는 순간 다시 찾아오는 그런 잠이다.”

_ 신형철, 2013.10. 30.

: 1:23 pm: bluemosesErudition

“Joseph’s wisdom can therefore be seen as a result of his faithful way of life in response to God’s benevolence.”

: 12:50 pm: bluemosesErudition

“들어가게 해 주세요. (……) 캐서린 린튼이에요. (……) 제가 돌아왔어요. 저는 벌판에서 길을 잃었던 거예요!”

“에밀리 브론테(에밀리 브론티)의 [폭풍의 언덕]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이 도입부의 목소리에 전율하지 못하고 이십 대가 됐다면 그보다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폭풍의 언덕]은 십 대 시절에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니까. 어떤 점에서 [폭풍의 언덕]은 열병의 소설이다.”

“‘왜 숱한 대중적 멜로드라마는 고전이 되지 못했는데, [폭풍의 언덕]만은 고전이 되었느냐?’ 대학 시절부터 나는 이 질문의 해답을 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문학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전히 나는 그 해답을 알지 못한다.”

_ 김연수, 2010. 9. 13.

: 2:22 am: bluemosesErudition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라는 이름을 들은 건, 1994년 봄 학기에 영문과 신경원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던 <빅토리아시대 영국소설>이라는 과목에서였습니다. 당시에 다뤄졌던 작품 중의 하나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이었는데, 강의 중에 <브론테 자매에 관한 맑스주의적 연구(Myths of Power: A Marxist Study of the Brontës, 1975, 1988)>라는 책을 언급하시더군요. 그런데 정작 내게는 책 제목 보다는 저자 이름이 더 인상적이었는데 왜냐하면 이름이 <캔디> 같은 만화에나 나올 법한 ‘테리’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이름이 ‘테리우스’의 테리가 아니라 테렌스(Terence)의 애칭인 테리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습니다만.”

* “1847년에는 샬롯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차례대로 출간되었다.”

: 2:18 am: bluemosesErudition

“1816년 4월 영국 요크셔주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자매들과 함께 열악한 기숙학교에 다니다 두 언니마저 영양실조와 폐렴으로 잃었다. 1825년부터 오 년 동안, 후일 [ 폭풍의 언덕 ]을 쓰는 동생 에밀리와 함께 집에서 독학했고, 이 시기부터 샬롯은 시를 쓰기 시작했다. 1831년 둘은 로헤드의 사립 기숙학교에 들어갔으나 에밀리는 심한 향수병으로 삼 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갔다. 샬롯은 그곳에서 삼 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 건강을 해쳐 그만두었다. 스물여섯 살에 에밀리와 함께 브뤼셀의 에제 기숙학교에 들어갔다가, 그곳의 교장 에제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1843년부터 혼자 학교에 남아 조교로 일하기 시작한 샬롯은 우울하고 고독한 생활을 했다. 에제를 향한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은 깊어 가지만 그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의 아내로부터 시샘을 받던 샬롯은 결국 1844년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정서적으로나 내면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으며, 후일 에제는 [제인 에어]에 로체스터 씨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1846년 아버지의 백내장 수술을 위해 맨체스터로 동행한 샬롯은 그곳에서 [제인 에어]를 쓰기 시작했다. [제인 에어]는 1847년 출판되자마자 커다란 호응을 얻으며 그녀에게 작가로서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여동생 에밀리와 앤 그리고 남동생까지 모두 잃고 크게 상심한다. 또한 그사이에 몇몇 남성들로부터 청혼을 받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부목사인 아서 벨 니콜스로부터 네 번째로 청혼을 받고 서른여덟 살에 그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 늦은 나이에 임신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 병이 겹쳐 결국 결혼 구 개월 만에 눈을 감고 말았다.”

: 2:04 am: bluemosesErudition

소탐대실, 이것은 몸소 경험한 진리다.

: 1:43 am: bluemosesErudition

“영화계는 움직이는데 가요계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 특히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라는 로커들이 아무 생각이 없어서 나도 깜짝 놀랐다. 세월호 이후 영화계에서는 성명도 나왔지만 유독 음악계만 반응이 없었다. 어차피 오버그라운드는 기획사의 입김이 많으니 인디 밴드를 모아서 해보려고 했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자본과 결부된 입김이 작용하는 거다. 뭔가를 이야기할 때 자기 밥줄과 관련됐다는 공포가 이미 시작됐다. 이런 공포가 암암리에 모두의 마음에 내재돼 있다. 하고 싶은데 못하는 마음, 혹은 관심 없음. 두 종류의 마음이 있다.”(이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