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슬람사회에서는 법학을 신학보다 우위의 개념으로 받아들여 중시한다. 그것은 이슬람이 ‘신앙의 실천의 체계’로서 현세의 삶을 중시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1. “아랍어의 ‘샤리아’는 ‘물가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이다. … 이슬람법은 예배, 종교부금, 금식, 순례, 장례, 세정 등 종교적 신행에 대한 규범(이바다)과 혼인, 상속, 징세, 친자관계, 노예와 자유인, 계약, 매매, 종교기금, 소송, 재판, 비무슬림의 권리와 의무, 범죄, 전쟁 등 사회적 관계(무아말라)에 대한 규범을 포함하고 있다.”
2. 샤리아는 “무슬림들의 행위를 5대 부류로 규범화하고 있다.” “와지브(의무): 예배, 금식, 효도 등과 같이 행하면 보상받고 행하지 않으면 처벌받는 행위”, “하람(금기): 음주, 절도, 이자놀이, 뇌물 등과 같이 행하지 않으면 보상받고 행하면 처벌받는 행위”, “만두브(권유): 친우나 이웃 방문, 외모 단정 등과 같이 행하면 보상받고 행자히 않아도 처벌받지 않는 행위”, “마크루흐(비난): 흡연, 해뜰 때까지의 늦잠 등과 같이 행하지 않으면 보상받고 행하면 처벌을 없으나 비난을 받는 행위”, “무바흐(허용): 직업이나 음식, 주택의 선택 등과 같이 행해도 보상이 없고 행하지 않아도 처벌이 없는, 즉 법과 무관하여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행위.”
3. “이슬람법에는 4가지 법원(法源)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법원은 경전 <꾸르안>이다. 총 114장으로 구성된 이 경전은 현세와 내세의 인간에 관한 알라의 모든 계시를 집대성한 대법전이다. … 법원의 견지에서 볼 때 경전내용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법적 원칙만 제시했을 뿐이며, 또한 초기 이슬람시대의 사회환경을 반영한 것인만큼 적용 면에서는 시대적 한계성을 면할 수 없다.” “샤리아의 두 번째 법원은 무함마드의 언행을 수록한 준경전 격의 <하디스>다. 이 언행록에는 무함마드가 한 말과 행동, 그리고 어떤 일에 대해 묵인한 것 등 3가지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법적 준거로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해짐에 따라 경전과 언행록의 두 법원에서 판결의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고안해낸 것이 이른바 끼야쓰(類推)와 이즈마으(合議)라는 두 가지 법원이다.” “유추와 합의에 의한 법원의 당위성이나 효력에 관해 많은 논란이 계속되다가 8세기 말엽에 이르러 법학자 샤피이(767~820)가 최종적으로 정리해냄으로써 마침내 4대 법원으로 확정되었다.”
4. “일단 확정된 법원일지라도 그 해석이나 적용범위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가 있어 결국 법학파가 생겨나고, 법학파들간의 논쟁 속에서 이슬람법학인 ‘피끄흐’가 정립되었다. 그 결과 8~9세기에 정통 이슬람사회에는 4대 법학파가 출현했다. 가장 이른 법학파는 8세기 초 이맘 아부 하니파(699~767)가 이라크에서 세운 하나피야파(일명 이라크파)다. 이 파는 이성과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경전에 명시되지 않은 경우에는 개인적인 견해에 따라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유추를 법원으로 인정하여 법적 판단에 가장 많이 적용했다. 다음으로 이맘 말리크 이븐 아나쓰(714~795)가 메디나에서 결성한 말리키아파(일명 메디나파)다. … 이맘 말리크는 하디스 수집의 대가였다. 그리하여 이 법학파는 메디나의 전통과 구전되어온 하디스에 준하여 법이론을 발전시켰다. 세번째 법학파는 이맘 말리크의 수제자인 샤피이가 이끈 샤피이야파다. 말라키아파뿐 아니라, 하나피야파의 법학에도 정통한 샤피이는 815년 이집트의 카이로로 옮겨가 전승을 위주로 하는 말라키야파와 이성을 중시하는 하나피야파의 법학을 절충하여 독자적인 새 법학체계를 세웠다. 그는 하나피야파가 즐겨 적용하던 유추를 최소화하고 말라키야파의 중심 체계를 이루고 있는 메디나 전통과 관행 중에서 오직 하디스만을 골라 법원으로 채택했다. 마지막 법학파는 샤피이의 제자인 아흐마드 이븐 한발(780~844)에 의해 출현한 한발리야파다. 이븐 한발은 앞의 세 파가 유추와 합의를 법원으로 채택한 것을 반대하면서 오직 경전과 하디스만을 법원으로 인정하고 독자적인 법학체계를 세웠다. 그는 이성을 적용하여 인위적인 것이 출현하면 그만큼 순수한 진리에서 멀어지는 위험성이 있다고 역설하면서 비록 확실성 검증에서 약한 하디스라고 판시(判示)한 것일지라도 이성에 의한 법원보다는 진리에 더 가깝고 옳은 법원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한발리야파는 유추나 합의의 법원을 부정하고 보수적이며 경직된 법학을 고집했다. 이븐 한발은 얼마나 보수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했는지 무함마드가 수박을 먹어도 좋다고 한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평생 수박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5. “오늘날 4대 법학파의 분포상황을 보면, 대체로 하나피야파는 이라크ㆍ터키ㆍ동유럽ㆍ아프가니스탄ㆍ구소련의 중앙아시아ㆍ중국ㆍ파키스탄ㆍ인도ㆍ하(下)이집트의 카이로와 델타 지역에서, 말라키야파는 모로코ㆍ알제리ㆍ튀니지 등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상(上)이집트ㆍ수단ㆍ쿠웨이트ㆍ바레인 등지에서 우세하다. 샤피이야파는 팔레스타인ㆍ레바논ㆍ예멘ㆍ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반도ㆍ동아프리카 인도양 연안에 퍼져 있다. 한발리야파는 북부와 중앙아라비아반도(사우디아라비아)에 집중되어 있다.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여느 이슬람 지역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한발리야파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_ 정수일, <이슬람문명>, 창비, 2002, 173~17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