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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5, 2017: 2:18 pm: bluemosesErudition

완벽주의는 낙담과 파괴적인 행동, 이혼의 결정적 이유가 될 수 있다. 완벽주의란 간단히 말해서 결점이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세상에나 다른 사람에게나 자신에게 있는 불완전함과 결점에 대한 공포증과 같다. 완벽주의자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범죄나 노화, 상실 등에서 벗어난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완벽주의자는 이상의 세계에서 살기 위해 노력하며 이상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지만 이상과 현실의 엄청난 괴리를 발견한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의 기대에 맞추어 살 수 없고,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완벽주의자는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굉장히 힘들어 한다. 그래서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자신의 이상에 맞게 다시 변화시키려고 애쓴다.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완벽주의자는 율법의 지배하에 산다. 그는 “네가 바르게 행동한다면, 사랑을 받을 것이다”라는 요구에 속박되어 있다. 바로 다음의 성경 말씀은 율법이 무엇인지 말해 준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다 잘하다가 한 번 잘못하면 비난을 받고 스스로를 미워하기 때문에 율법의 지배하에 사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상과 목적은 좋지만 자신의 목적이 완벽히 이루어지길 원한다면 당신은 이상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완벽주의로 인해서 당신의 안정적인 인간관계에 단절이 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완벽주의는 당신이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것이 부적격하다고 막는다.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불가능한 기준 때문에 사람들과 친해지지 못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너무 예민하게 자신의 실패, 범죄, 연약한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나쁜 점만 보게 된다. 그리고 율법적으로 자신을 비난한다. 자신이 악해서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며 혼자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면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실패를 지나치게 크게 보고 하나님의 사랑은 아주 작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완벽주의자는 ‘아무도 날 사랑하려 들지 않을 거야. 난 너무 부정적이고 추하고 나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보면 모두가 멀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스스로 고립을 자청한다.

둘째로 다른 사람을 자신과 관계 맺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완벽주의자는 다른 사람의 결점만 보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좋은 점이라든가 긍정적인 면은 보지 못한다. 그는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고쳐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거나 그 관계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쉽게 결정내리곤 한다. 완벽주의자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비판과 자기혐오를 투영하고 자신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경감시키려 하기도 한다. 종종 완벽주의자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하며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은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과 친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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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이 현실 세계에서 완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가 끊임없이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고 실망감도 안겨 주리라는 것을 잘 알 뿐 아니라 예상하고 있다. 이들에겐 이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_ 헨리 클라우드, 존 타운센드, <나는 안전한 사람인가?>, 토기장이, 2017(3판 1쇄).

: 2:22 am: bluemosesErudition

김애란의 문장을 읽으며 하루키의 말이 떠올랐다. _

“전 글쓰는 법 같은 걸 누구한테 배운 적이 없고, 딱히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어디서 글 쓰는 법을 배웠느냐 하면 음악에서 배웠거든요. 글에 리듬이 없으면 그런 거 아무도 안 읽습니다. 읽는 이를 앞으로, 앞으로 보내는 내재적 율동감이랄지 …… 기계 설명서는 비교적 읽기 괴롭잖습니까? 그게 리듬이 없는 글의 한 전형입니다. 새로운 작가가 나왔을 때, 이 사람은 남을지 아니면 머잖아 사라질지 하는 건 그 사람이 쓰는 글에 리듬감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대개 판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문학비평가는 제가 보기에 그런 부분에 별로 주목하지 않더군요. 글의 정밀함, 말의 새로움, 이야기의 방향, 테마의 질, 수법의 재미, 그런 걸 주로 다룹니다. 그렇지만 리듬이 없는 글을 쓰는 사람은 문장가의 자질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제 생각이 그렇다는 것뿐입니다만. 단어의 조합, 문장의 조합, 문단의 조합, 딱딱함과 부드러움,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합, 균형과 불균형의 조합, 문장부호의 조합, 톤의 조합에 의해 리듬이 생깁니다. 폴리리듬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음악과 마찬가지인 겁니다.”(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