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의 음절로 빚은 시행 14개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야고보서 2:10)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위대한 개츠비) - “교훈적인 문장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문구는 가슴에 잘 새기려고 노력합니다. 타인을 대할 때도 그렇고, 작가가 인물을 만들 때 역시 참고할 만한 자세라 생각합니다.”(김애란)
“밤은 저 빛들이 얼마나 아플까”(안준철)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누가복음 7:47)
“나는 그때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목사가 된다면, 내가 만약 다시 한 번이라도 말씀을 전하고 설교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맨 먼저 마음을 다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겠다’고. 또 나는 아내에게 ‘예배당 의자의 한 줄에 한 명씩은 정말 부서진 마음을 부여잡고 교회를 찾는 사람이 있음을 확신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전할 것이다’라고 다짐했다.”(고든 맥도날드)
“안전한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이 현실 세계에서 완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 모두가 끊임없이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실수도 할 수 있고 실망감도 안겨 주리라는 것을 잘 알 뿐 아니라 예상하고 있다. 이들에겐 이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헨리 클라우드, 존 타운센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에베소서 2:8-9)
“조선족 1세대는 일제강점기 때 건너간 조선인이고, 2세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태어난 조선족 중국인이다. 3세대는 문화대혁명을 겪지 않은 이른바 ‘70후(後)’ 이후 세대로 개혁·개방의 물결과 함께 자라 이념의 틀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국제 감각도 지녔다.”
“1993년 길림성 중부의 작은 도시 메이허커우(梅河口)에서는 경사가 났다. 그곳의 조선족 학생이 길림성 대입 시험에서 문과 수석을 차지한 것이다. 장춘이나 길림처럼 대도시도 아니고, 연길처럼 조선족이 많은 곳도 아니어서 놀라움은 더했다.”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에서는 한 반의 30명 중 유일한 소수민족이었다. 고향의 조선족학교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콤플렉스를 경험했고 정체성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정법(政法)대 석사과정을 다니며 변호사 자격증과 법학석사 학위를 땄다. 졸업 직전부터 1년 반가량 로펌에서 일했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던 중 친구가 일본 유학을 권했다. ··· 2000년 12월 도쿄대 법학정치학연구과에 외국인 연구생으로 입학했다.”
“도쿄대에서 연구원으로 박사후과정을 보내던 중 서울대에서 제의가 왔다. 중국과 일본의 법률을 함께 강의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다. 선배의 권유에 따라 지원서를 냈고 2011년 초 조교수로 임용됐다.”
강광문 교수는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KCN)에 관여하며 계간지 ‘맥(脈)’의 발행을 돕는가 하면, 2011년에는 예동근 부경대 교수 등 국내 거주 조선족 3세 12명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를 함께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