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November 30th, 2017

November 30, 2017: 12:46 pm: bluemosesErudition

“매스컴은 反커뮤니케이션이다. 인간의 모든 것을 부끄럼 없이 말하는, 어떻게 보면 좀 무정할 정도로 정직한 의사소통의 전형인 문학을 따라서, 진실을 알려야 할 상황을 無化시키고 있는 매스컴에 대한 강력한 抗體로서 존재한다. 문학은 근본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표현할 수 없는 것, 표현 못 하게 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와 그것에의 도전으로부터 얻어진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까? 어떻게 침묵에 사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나는 말할 수 없음으로 양식을 파괴한다. 아니 파괴를 양식화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시에서, 말하는 양식의 파괴와 파괴된 이 양식을 보여 주는 새로운 효과의 창출을 통해 이 침묵에 접근하고 있다.”

_ 황지우, <사람과 사람 사이의 信號>, 한마당, 1986.

“황지우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信號>는 뛰어난 시인이 쓸 수 있는 좋은 산문집이다. 김수영, 정현종, 김지하의 산문집에 필적할 만한다. 지식노동자로서의 부끄러움이 배어 있지만, 감성적이면서도 빠트린 것 하나 없는 것 같은 지적 문장, 뛰어난 분석력(분석은 분석을 벗어나는 것을 과감히 버리는 행위까지를 포함한다. 바보들만 하나도 안 버리려다가 다 버린다), 음흉한 자기 방어(그 반작용으로의 공격력)는 눈여겨볼 만하다. 좋은 산문가는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_ 김현, <행복한 책읽기>, 문학과지성사, 1992.

: 12:29 pm: bluemosesErudition

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 12:27 pm: bluemosesErudition

네 감은 눈 위에 꽃잎이 내려 앉으면 / 네 눈 속에 꽃이 피어난다.

네 감은 눈 위에 햇살이 내리면 / 네 눈 속에 단풍나무 푸른 잎사귀들이 살랑거린다.

네 감은 눈 위에 나비가 앉으면 / 네 눈동자는 꽃술이 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을까.

먼 항해에서 돌아온 배의 노처럼 / 네 긴 속눈썹은 가지런히 쉬고 있다. / 가끔씩 배가 출렁이는지 / 넌 가끔 두 주먹을 꼭 쥐기도 한다.

네 감은 눈 속에 눈이 내리면 / 나는 새하얀 자작나무숲을 한없이 헤매고 있을 거야. / 지친 발걸음이 네 눈동자 위에 찍힌다.

네가 눈을 뜨면 내 눈은 까맣게 감기고 말 거야.

나는 너를 채우고 너는 내게서 빠져나간다. / 우리는 번지면서 점점 뚜렷해진다.

_ 신철규, “데칼코마니”,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