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27th, 2018

May 27, 2018: 10:36 pm: bluemosesErudition

이승만은, 1950년 6월 27일부터 9월 29일까지 서울에 없었다.

: 1:22 pm: bluemosesErudition

“번역 핵심은 쓰기보다는 읽기에 있습니다. 어떤 텍스트를 놓고 인간적인 읽기를 해서 맥락을 파악하고 재구성하는 것이죠. 그런데 맥락이라는 것이 큰 범위이고, 어떻게 보면 책 한 권 전체, 저자의 세계, 시대 전체가 될 수 있어요. 인간의 읽기는 그걸 다 동원하는 거죠. 기계는 그게 잘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일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번역의 결과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필연”이라며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사이에 인간의 상상을 집어넣지 않고는 번역을 할 수 없다. 어떤 텍스트의 독자가 되는 순간, 빈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 영역이 생기는 것이고, 그래서 번역이 인간적인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오랜 세월 번역을 업으로 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좋은 번역이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한다. 다만, 발터 벤야민 이론을 토대로 “번역가의 과제는 완전한 ‘번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언어’에 이르는 것”이라고 쓴 내용을 이렇게 부연했다.

“보통 A라는 언어, 고정된 실체를 B라는 언어로 옮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역이냐, 의역이냐’, ‘원작에 충실할 것이냐,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 데 충실할 것이냐’ 논란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얘기는 A라는 언어가 있을 때 이것을 완결된 실체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는 고정된 상태로 텍스트 안에 담겨있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인지·인식과 상호작용하면서 해석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는 거니까요. 결국 번역은 고정된 덩어리를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두 언어 안에서 미완된 부분, 제3의 어떤 부분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책에서 “우리의 번역 작업은 불완전한 양쪽 언어에서 어떤 완전한 언어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현재 우리의 언어는 성기고, 번역의 반은 상상인 것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4:18 am: bluemosesErudition

“야구 선수들의 성적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저 야구의 요소 중 예측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리해내야 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예측 가능한 것은 ‘기술’, 예측 불가능한 것은 ‘운’, ‘무작위성’이라고 할 수 있다. (FiveThirtyEight.com 운영자이자 미 대선 예측가로 유명한 네이트 실버는 그의 책 <신호와 소음>에서 전자를 ‘신호’, 후자를 ‘소음’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온갖 기술적 분석을 사용하는 돈벌이의 귀재들이 ‘무작위성’을 예측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무작위적 과정의 결과를 예측하려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무작위적인 것들의 분포를 이해하고 역설적이지만 이를 통해 예측의 정확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절대 무의미하지 않다. 이 조사를 위해서는 다양하 야구 기록들이 가지는 미묘한 차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기록이 선수의 기술만을 평가하는지, 아니면 운이란 요소가 기록에 작용을 하는지, 만약 작용한다면 그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까지 말이다.”

: 3:56 am: bluemosesErudition

10장에서 하나 더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463쪽에 그래프로 제시된 ‘예측의 파레토 법칙’이다. 이 파레토 곡선은 학습을 통한 지식향상 곡선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그래프가 전달하는 내용은 ‘최고 전문가의 20% 수준만 노력해도 그의 전문성 80%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호구가 소수의 고수를 먹여 살리는 포커판에서는 자신의 실력과 운을 무작정 믿는 것보다 작은 노력을 통해 전문가의 80% 수준에 이르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훨씬 더 상대방 카드를 예측하는 게임에서 생존하는데 훌륭한 전략이 된다.

마지막 13장은 테러, 즉 ‘미지의 미지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르는 것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미국은 9.11 사태 이후 사후 분석을 통하여 사고의 원인을 정책, 역량, 관리, 상상력의 실패라고 규정했는데 바로 상상력의 부재가 미지의 미지수와 관련되어 있다. 데이터 안에는 신호가 숨어 있는데 질문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신호가 포착되어도 그 신호를 분류할 카테고리가 없다. 따라서 그 신호는 무시되거나 다른 질문과 관련된 카테고리로 분류되게 된다. 따라서 질문할 수 없는 것, 그 것이 바로 상상력 부족 때문이고 질문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신호를 포착할지 모르며 설사 신호가 포착된다고 해도 제대로 분류, 분석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럼즈펠드가 이야기한 ‘known unknown’ 표현을 네이트 실버가 질문과 대답의 관계로 치환하여 독자에게 전달한 부분은 그의 명민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 브래드 피트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머니볼을 보면 데이터가 스카우터를 대치할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통계학자와 스카우터는 좀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협력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스카우터 비용도 더 증가하고 있다. 야구선수 성적을 통해 본 정확한 예측의 열쇠는 계량적 정보에만 의존하지 말고 정보를 ‘적절한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한다.

: 3:47 am: bluemosesErudition

1. 기존의 예측값(prior, 사전확률)에 새로운 정보가 더해져 새로운 예측값(posterior, 사후 확률)이 나온다. 다음 단계에서는 사후확률이 사전확률 역할을 하고 여기에 다시 새로운 정보가 더해져 좀 더 정확해진 새로운 예측값을 만들어 낸다.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베이지안 방법론의 근간이다. 베이즈 정리에서는 이렇게 데이터가 많으면 많을수록 찾고자 하는 값을 예측하는 정확도가 올라간다. 바로 여기가 빅데이터가 베이즈 정리와 만나는 지점이다. 네이트 실버는 첫 장 ‘들어가며’ 부분에서 폴 크루그먼의 이야기를 들어 1970년대는 ‘극단적으로 적은 자료’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론이 적용된 시기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빅데이터 시대는 자료가 부족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과잉일 만큼 넘쳐난다. 따라서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는 빅데이터 시대에 ‘베이지안’ 접근법이 보다 유용하다는 것이다. 베이지안 통계학은 흔히 조건부 확률이라고 불리며 제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 암호를 풀고, 아군이 쏜 대포가 어디에 떨어질 지 예측하거나 전투에 내 보낸 전투기가 추락할 위험도 등을 측정하는데 활용되면서 그 유용성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인터넷과 빅데이터 분야에서는 전통적인 피셔리안(Fisherian) 통계학보다 폭넓게 쓰이고 있다고 한다.

2. 베이지안 접근방식에 따르면 데이터에서 추출된 신호들은 예측값을 점점 더 진리, 참 쪽으로 접근시켜 나간다. 이에 비해서 소음은 예측값을 진리값 쪽으로 접근시켜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데이터는 반드시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의해 매개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해석자의 편견, 탐욕과 공포, over fitting, 정치적 입장,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패턴 인식 능력 등이 개입된다. 이러한 개입이 네이트 실버가 이야기하는 ‘객관적’ 의미로 개입되면 신호는 신호로, 소음은 소음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bias가 잘못 작용하여 ‘주관적’으로 개입되면 신호가 소음으로, 소음이 신호로 둔갑한다. 이렇게 되면 베이지안 접근방식이 아무리 파워풀한 도구(tool)라고 해도 ‘빅데이터’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리와 참값의 반대 방향으로 예측을 밀어가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3. 네이트 실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베이지안 모델을 통해 불확실성을 다루는 예측을 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고백하는 것이다(사전확률 부분). 그리고 예측할 수 있는 것(신호)과 없는 것(소음)을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자신의 모르는 부분을 부단한 시행착오를 통해 보완, 발전시켜 나가려는 노력(사후확률 부분)을 경주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베이지안 접근방법은 예측 방법론을 넘어 세상을 사는 인생관까지 될 수 있다.

: 3:09 am: bluemosesErudition

28~29. 괴짜 수도승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수도승은 새로운 천문학 책을 몇 번이나 읽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북쪽 학자의 말은 사실이다. 태양은 한자리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다. 지구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생각은 모두 틀린 것이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쪽의 어느 천문학자도 망원경으로 별의 움직임을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북쪽 학자의 말이 맞다. 둥근 대지가 움직인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그런 터무니 없는 말로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자는 용서할 수 없다.” 어떻게 해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던 수도승은 결국 화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북쪽의 천문학자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남쪽의 천문학자는 재판에서 “내가 말한 것은 잘못이었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6~47. 만일 톱니바퀴의 수를 줄이더라도 같은 움직임이 가능하다면 신은 곡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였습니다. 이심원과 주전원의 이중의 움직임을 이용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했던 토성의 역행을, 코페르니쿠스는 토성도 지구와 함께 돈다고 생각하면 지구가 토성을 초월한 형태로 돌아가게 되므로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실마리가 되어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저술하고 지동설을 주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의 교정쇄가 나왔을 때 죽음의 자리에 있었다는 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수도승 브루노는 지동설을 열렬히 지지하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세계의 모습을 널리 알리고자 여러 곳에서 강의했지만 브루노의 생각은 당시의 천동설이나 성서의 가르침에 크게 반했기 때문에 1600년 2월 17일 로마의 캄포 디 피오리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신이 과학을 탄압한 슬픈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이어서, 목성을 돌고 있는 네 개의 위성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정확함을 확신했던 갈릴레이도 종교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싸움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300~500년 전의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종교의 일방적인 결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 무렵의 세계는 점성술이나 연금술, 마술 등 괴상한 미신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게다가 누구도 페스트균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페스트가 악마의 탓이라 믿었던 것입니다. 이토록 어두운 시대, 즉 브루노가 죽음을 당한지 40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어린이들도 알고 있으며,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달나라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럼 사람들은 모두가 지동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고 있는 것을 구별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동설을 옳게 이해하고 있다면 천동설 시대의 미신인 마술이나 점성술을 믿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동설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앞에서 말한 천체 움직임의 이치를 이해할 뿐 아니라 천동설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으며,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에 마음이 끌렸을 때 틀림없이 잠들 수 없을 만큼의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70세의 노인이 되어 무식한 재판관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던 갈릴레이는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요? 하물며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화형을 당했던 브루노는 어떻겠습니까? 이러한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지구는 둥글고 움직인다”는 것을 아무런 감동 없이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미 지구본을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다시 한 번 지동설의 놀라움과 슬픔을 느껴 보기를 바라면서 썼습니다.

1543년 :
코페르니쿠스(1473~1543),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저술, 지동설을 확립함.

1572년 :
티코 브라헤(1546~1601), 새로운 별을 발견.

1597년 :
케플러(1571~1630), 화성 운행에 관한 연구를 시작.

1600년 :
브루노(1548~1600), 열렬히 지동설 지지. 이단자로 화형에 처해짐.

1616년 :
갈릴레이(1564~1642), 종교재판에서 지동설 포기를 강요당함.

1632년 :
갈릴레이 불후의 명작 <천문 대화>를 발표. 그 해 두 번째 종교재판에서 굴복함.

1642년 :
갈릴레이가 사망한 이듬해에 뉴턴(1643~1727)이 출생한 것은 과학사의 우연이라 하겠음. 뉴턴은 1687년 ‘만유인력의 법칙’을 밝혀 지동설을 밝혀 지동설을 부동의 학설로 확립함.

_ 안노 미쓰마사, <천동설 이야기>, 한림출판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