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10

January 5, 2010: 4:27 pm: bluemosesErudition

“문화란 다른 것 - 개인의 심리, 담론 또는 경제 - 의 반영으로 축소될 수 없는, 물질적인 상징의 양식과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간행동의 의미라는 상호 연관된 실천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Paul Willis, 2004)

: 4:18 pm: bluemosesErudition

1. 비난하며 추종하는 이유, 다시 말해 대전제가 옳지만 소전제가 그릇된 까닭은, 적대적 관계가 [주류의식이라는] 동일한 욕망에 토대하기 때문이다.

2. 적대적 투쟁은 실상 비교우위를 획득하려는 경쟁이기에, 자유는 간극을 폭력적으로 확대하는 이데올로기에 동원되며, 평등은 격차를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이데올로기에 기여한다. 양자 모두 ‘위계의 인식’ 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간과한다.

3. 인권은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과 일치하는 상태에서 실현 가능한 것으로서 명분과 실리가 상응할 때 비로소 구현될 수 있으며, 이는 위계를 자연질서로 간주하는 오해의 불식에서 시작한다.

4. 비교우위의 욕망을 경계확장의 열망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애’(philia)가 요청될 것이며, 그것은 어떠한 형태이든 공동체(commune)로 현현할 것이다.

: 3:43 pm: bluemosesErudition

Christ’s disciple be based on biblical world-view in everything

January 4, 2010: 8:54 pm: bluemosesErudition

1. “우리가 덕을 쌓으면 대전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phronesis)가 없으면 소전제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을 포착해서 일반적인 것과 연결하는 일은 지혜가 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지혜는 ‘헤아림의 기능을 연마하여 획득한 성향’입니다. … ‘실천적 덕은 행위의 목표를 옳게 정하게 해주며 지혜는 그것을 달성하는 방식을 올바르게 해준다.’(<<니코마코스 윤리학>>, 1144a 7-9) 얼핏 보면 지혜는 수단에만 관여하는 듯하나 상세히 보면 구체적인 수단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야 하므로 전체적인 조망을 따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전제 궁시렁거리기로 몇십년 동안 앵벌이 짓을 해온 ‘진보 진영에 속한다는 사람들’은 건강에 좋은 굽네치킨에게 많이 배워야겠습니다.”

2. 대전제는 옳고, 소전제가 그른 “나쁜 역할을 하는 좋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비정규 문제와 신자유주의를 반대합니다. 다만 당장 싸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맞는 말이지만 현실이..’ ‘일단 최악부터 막아야..’ ‘김대중 노무현 정권 수준이라도..’ 그게 바로 그들이 비정규 문제와 신자유주의를 찬성하는 방식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들이 스스로를 ‘민주 세력’ 이라 부르는 건 진심인 것입니다.”

3. “지혜는 이념을 알면서도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까지 챙길 줄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만 아는 이는 바보입니다.”

: 8:39 pm: bluemosesErudition

나쁜 열매를 맺는 일이 아니라 좋은 씨앗을 뿌리는 일을 택하는, 변곡점에 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