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2011

January 28, 2011: 5:25 pm: bluemosesErudition

“미래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면 불확실성으로 인해 좌절하기 쉽다. 불확실성은 스트레스를 증폭시키며 불안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1:07 pm: bluemosesErudition

1. 상인 형과 경연을 소재로 담화. 동독과 조선은 체제와 의식의 일면이 다른 하나를 압살하였다. 옛 조선과 현 남한의 유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연이 국정과 함께 민중의 지향을 규정하는 지표였다면, 어쩌면 우리의 교육과 그들의 경연은 닮지 않았을까. 아니다. 가설을 폐기한다. 경연이 지속되었더라면 적어도 정조 이후의 조선은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사사기 묵상 시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세속으로 진입하여 정착하는 과도기라는 사실이다. 저들이 숭배한 우상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수긍한 가나안의 세태였다. 황폐한 사막에서 이웃과 더불어 은송림을 구현해가는 것이 대안이라면, 수술 중 각성의 극복은 청사진 제시와 그것의 관철에서 파생된다. 그러나 여전히 공감대 형성은 미흡하다.

: 12:56 pm: bluemosesErudition

“진실성이 없으면 잠재력을 극한까지 발휘할 수 없다.” 경계하고, 근신하자.

: 12:51 pm: bluemosesErudition

프랜시스 쉐퍼(1912~1984)와 박윤선(1905~1988)은 반틸(Cornelius Van Til, 1895~1987)을 사사했다. 그로부터 전자는 ‘전제 회의 각성’, 후자는 ‘계시 의존 사색’을 얻었다.

January 27, 2011: 11:17 pm: bluemosesErudition

“기든스는 현재 인류의 삶을 마치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크리슈나의 수레(juggernaut)를 타고 있는 것으로 비유한다. 이 수레는 막대한 힘을 가진 폭주 차량으로서,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는 운전할 수 있지만 통제 한계를 벗어나서 질주할 수도 있으며 따라서 언제 산산조각이 날지 모르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크리슈나의 수레를 조종하려는 시도를 포기해서는 안 되고 또 포기할 수도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유토피아적 현실주의의 모델이다. 유토피아적 현실주의는 역설적으로 전 인류가 지금 침몰 위기에 있는 한 배를 타고 있는 공동 운명체임을 자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January 26, 2011: 3:13 pm: bluemosesErudition

0. Freud, S., 김석희 역, <문명 속의 불만>, 1929[2003], 285~295쪽.

1. 키르케고르는 <사랑의 역사役事 Works of Love>의 위대한 장 제2부 C,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에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상적인 이웃은 죽은 자라는 주장을 전개한다. 유일하게 훌륭한 이웃은 죽은 이웃이라는 것이다. …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평등을 의미한다.” “그 모든 차이를 버리면 네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차이가 사라지는 것은 오직 죽음 속에서 뿐이다. “죽음은 모든 차이를 제거한다. 그러나 편애는 언제나 차이들과 관계가 있다.”(Reinhard, K. et al., 2005[2010]: 10)

2. “이웃의 정치신학은 보편적인 것이 차이의 상황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보편적인 “것의 조건은 차이의 축소 속에서가 아니라, 그것들 속의 특이하게 보편적인 것을 결정함으로써, 보편성의 가능성을 표상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정의는 차이를 동등화하는 기능이 아니며, 오히려 동일성의 조건과 다른 것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승화에 의존한다.”(Reinhard, K. et al., 2005[2010]: 117)

3. 클로드 르포르,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야니타 스카브라카키스 등의 급진 민주주의자들에 따르면, “대타자는 없다”는 라캉의 테제는 “사회-상징적 질서는 일관되지 않으며 그것을 보증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민주주의는 이런 궁극적 근거의 결여를 권력 체제로 통합하는 방법”이다. “조화로운 사회적 총체라는 유기체적 관점이 환상에 의존하는 반면 민주주의는 환상을 가로질러 모순 없는 사회라는 불가능한 이상을 부정하는 정치적 입장을 제공한다.”

* Kierkegaard, Søren Aabye를 ‘키에르케고르’가 아닌 ‘키르케고르’로 표기한다. 각설하고, 키르케고르는 이전에 그랬듯 예기치 않게 부각된다.

: 3:10 pm: bluemosesErudition

어디선가 프로이트는, 성숙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역량의 증대’라 하였다.

January 25, 2011: 12:36 pm: bluemosesErudition

신간 확인

January 24, 2011: 10:37 pm: bluemosesErudition

1. “The ideal historian of Marxism has to be part theoretician, part polymath; part believer, part sceptic; polylingual but not Pollyanna.” … “How To Change the World … is his 16th book and appears, impressively, in his 94th year. Although the book is largely made up of previously published material, much of it has never appeared in English and some of it has been revised and updated.”

2. “Hitherto, philosophers have sought to understand the world;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 … “Perhaps the truth is that Marxism has, despite its founder’s famous proclamation, always contributed more to understanding the world than to changing it. Certainly, Eric Hobsbawm has done more than most to further that understanding. And if we ask what his own final view may be about the prospects for changing the world, then we are, happily, still in a position to adapt Zhou Enlai’s answer about the French revolution – that it’s too early to say.”

: 9:54 pm: bluemosesErudition

1. “투기적 사건을 근원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범주나 대중심리에 의해 형성된 버블의 범주로 밀어넣기 전에 합리적인 설명을 제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버블 이론은 단순히 우리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자산가격 운동의 일부에 우리가 붙이는 이름일 뿐이다.”(피터 가버)

2. 피터 가버는 “설명할 수 없는 걸 거품이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걸 거품이 아닌 다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는지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이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