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ugust 11th, 2014

August 11, 2014: 3:40 pm: bluemosesErudition

수평선 상의 다양한 이를 인도하는 자는 앞서 자신의 우위를 과시하지 않는다. 묵묵히 타인의 본이 되고 뒤에서 필요를 헤아려 채운다. 공개적으로 따르는 이 없어도 마음을 얻은 자는 그의 행보로 무리의 향방을 바꾼다.

: 10:42 am: bluemosesErudition

1. “1936년 제정 이후, 매 4년마다 2-4명의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이 영예는 흔히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캐나다의 수학자인 존 찰스 필즈(John Charles Fields)는 “1차대전 이후 국가 간 라이벌 관계와 동맹국 대 연합국 간의 적대만이 지나치게 부각되던 과학계의 분위기 속에서, 전 세계 수학자들 간 단합과 연대를 위해 필즈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필즈상이 ‘시샘을 부추길 수 있는 비교’를 지양하고, 과거의 성취보다는 ‘미래 가능성을 독려할 수 있는’ 상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후에 필즈상이 40세 이하의 젊은 수학자들에게만 수여되는 전통의 근거가 되었죠.”

2. “필즈상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명성을 자랑했던 것은 아닙니다. 1950년에만 해도 수상자 두 사람은 자신들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기 전까지 필즈 메달이 뭔지도 몰랐으니까요. 필즈상이 명실공히 수학계의 노벨상이 된 역사를 돌아보면, 종종 잊혀지곤하는 수학과 정치의 교차점이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1966년 8월 5일, 샌프란시스코 이그제미너(San Francisco Examiner)지에는 UC버클리의 수학자 스티븐 스메일(Stephen Smale)이 베트남전 반대 운동에 연루되어 하원의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소환되었으나 모스크바로 도주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사실 스메일은 소환장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유럽에 가 있었고, 당시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에 필즈 메달을 받으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를 친소련파로 몰아붙이는 여론도 있었지만, 뉴욕타임즈 등 몇몇 언론은 조금 다른 입장을 취했습니다. 스메일의 동료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 즉 ‘스메일은 수학계에서 노벨상과 가장 가까운 상을 받기 위해 외국으로 간 것’이라는 말을 인용해 보도한 것입니다. 약간의 과장이 들어간 말이었지만, 이 말로 인해 스메일의 입지가 달라졌고 그가 혐의를 벗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 해, 스메일은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의 반전 활동을 탐탁지 않게 여긴 세력이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스메일이 ‘수학계의 노벨상’을 받은 수학자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그는 연구비를 지켜낼 수 있었죠. 그러니까 필즈 메달이 노벨상과 엮기게 된 것은 어찌보면 냉전의 산물인 것입니다.”

* 2014 서울 세계수학자대회 ICM·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8. 13. ~ 8. 21.

: 10:27 am: bluemosesErudition

출근길 십자가

: 10:22 am: bluemosesErudition

1PE 3:10-12 ESV

“Whoever desires to love life and see good days, let him keep his tongue from evil and his lips from speaking deceit; let him turn away from evil and do good; let him seek peace and pursue it. For the eyes of the Lord are on the righteous, and his ears are open to their prayer. But the face of the Lord is against those who do evil.”

: 8:35 am: bluemosesErudition

1. 개국 |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2. 태조·정종실록 | 정도전의 개혁과 왕자의 난

3. 태종실록 | 왕권을 세우다

4. 세종·문종실록 | 황금시대를 열다

5. 단종·세조실록 | 반역은 또 다른 반역을 낳고

6. 예종·성종실록 | 대신권력에서 대간권력으로

7. 연산군일기 | 절대권력을 향한 위험한 질주

8. 중종실록 | 조광조 죽고… 개혁도 죽다

9. 인종·명종실록 | 문정왕후의 시대, 척신의 시대

10. 선조실록 |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11. 광해군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12. 인조실록 | 명분에 사로잡혀 병란을 부르다

13. 효종·현종실록 | 군약신강의 나라

14. 숙종실록 | 공작정치, 궁중 암투, 그리고 환국

15. 경종·영조실록 | 탕평의 깃발 아래

16. 정조실록 | 높은 이상과 빼어난 자질, 그러나…

17. 순조실록 | 가문이 당파를 삼키다

18. 헌종.철종 실록 | 극에 달한 내우, 박두한 외환

19. 고종실록 | 쇄국의 길, 개화의 길

20. 망국 |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

: 7:31 am: bluemosesErudition

“일본의 공영 방송 NHK가 방영하여 전 일본에 충격을 안겨줬던 일본의 반역자 사야가沙也可 김충선金忠善은 누구인가? 20대 초 일본의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의 장수로 출정하여 단 한 차례의 전투도 치르지 않고 부하 3천 명을 이끌고 항복 투항했던 철포의 대장이 바로 사야가 김충선이었다. 도대체 왜? 그 일본인 청년 장수는 조선으로 투항하여 자신의 조국 일본과 전쟁을 벌여야 했는가? … 사야가 김충선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 묘사되어 있는 항왜 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으로 귀화한 400년 전의 실존인물 사야가 김충선은 조총부대의 대장이었다. 그의 이름이 사야가로 불리게 된 것은 당시 일본 조총부대를 사이카라고 불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는 바다의 이순신과 버금가는 육지의 영웅이었다. 사야가 김충선은 패배가 없는 전승의 장군으로 임진왜란(1592-1598)과 이괄의 난(1624), 병자호란(1636) 등에서 활약하여 삼난공신으로 불려진다.”

: 6:22 am: bluemosesErudition

그토록 충성하여도 얼마나 위태로운가.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 밖에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