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세 이후의 삶, 명석한 판단을 제시할 수 있을까.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성서>>에 있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는 말, 즉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에 나타나 있습니다. ··· 거지처럼 손을 내밀고 신이 주는 것은 모두가 시혜라고 여기면서 받는 마음, 그것이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이마미치 도모노부)
“우직한 시늉이라도 해라. 극우 정치인이라면 국가에 대한 의리에, 자유주의 정치인이라면 시민에 대한 의리에, 진보 정치인이라면 민중에 대한 의리에.”(김규항)
1. “인간의 고귀함과 나약함을 두루 겸비한 인간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나약함을 보면서 공감하고, 고귀함을 통해서 동경을 불러일으킵니다.”(69)
2. “무릇, ‘해석’은 ‘의미 부여’와는 다르다. 의미 부여는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작품에 부여하는 것이다. 이를 ‘해석’이라 칭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오만한 생각이다. … ‘ 의미 부여’와 ‘의미 발견’은 그 차이를 자연과학 실험처럼 확연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단테가 ‘지옥은 정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맨 처음에 썼던 말을 마음 깊이 새겨 두면, 우리가 단테의 지옥을 통해 무엇을 발견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하는 갈피를 잡을 수 잇다. 단테의 지옥도는 ‘지옥을 통해 신의 정의를 깨우치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 우리가 고전을 접할 때 중요한 자세는 ‘의미 부여’가 아니라 ‘의미 발견’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281)
* 이마미치 도모노부(지음), 이영미(옮김), «단테 신곡 강의», 안티쿠스, 2008.
“나는 1979년에 첫 소설을 썼지요. 그 때부터 나는 항상 1인칭을 고집했어요. 나는 몇 번 3인칭을 시도했고, 시도할 때마다 나는 그들을 위에서 바라본다는 생각에 불편함을 느꼈죠. 내가 쓴 첫 번째 3인칭 소설이 ‘해변의 카프카’이니, 20년이 걸렸군요. 나는 등장인물들과 같은 위치에 있고 싶어요. 그게 민주주의죠!”
“하나의 소설을 쓰는 데 1년에서 2년이 걸립니다. 그리고 나는 매일매일 글을 쓰지요. 지칠 수 밖에 없어요. 나는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지요. 내가 다른 이야기를 쓰는 것은 내가 재미있기 위해서이고, 물론 독자들도 재미있기를 바라구요. 나는 1인칭으로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편지들이나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요.”
“나는 앞으로 어떻게 내용이 전개될 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시작하지요. … 나는 매일 그 다음날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라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가서 컴퓨터를 켭니다. 그리고 내게 말하지요.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흥미롭지요!”
“자연스럽게 음악들은 선택됩니다. 소설을 쓸 때 나는 어떤 음악적인 무언가를 필요로 하고, 그 노래들은 저절로 내게 다가와요. 나는 화음, 리듬, 즉석 연주 등 음악에서 많은 것을 배웠죠. 독자들이 책을 계속 읽게 하기 위해 리듬은 특히 중요하죠. 나는 글을 쓸 때 거의 음악을 듣고, 그럴 때 책에 넣을 음악들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