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프킨을 통해 맬서스의 심성을 비로소 이해하였다. 리프킨은 우리 시대의 맬서스다. <엔트로피>는 우리 시대의 <인구론>이다.
리프킨을 통해 맬서스의 심성을 비로소 이해하였다. 리프킨은 우리 시대의 맬서스다. <엔트로피>는 우리 시대의 <인구론>이다.
“<에밀>의 교정이 늦어지자, 원고가 예수회에 도난당한 것이 아닌가 괴로워하던 끝에, 정신 착란 상태에 빠짐.” 당시 49세.
농업혁명은 왜 일어났는가. 제래드 다이아몬드는 [군사적 이점과 결부된] ‘문명의 전파’로,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의 극대화’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뭐라 하는가.
“동사 ‘하다’에 보조용언 ‘만하다’가 ‘-을 만하다’의 구성으로 쓰인 말로 ‘할 만하다’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고 ‘할만하다’로 붙여 씀도 허용하고 있습니다.”
베다니는 히브리어로 ‘빈민의 집’, 아람어로 ‘고통의 집’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곳이 바로 ‘베다니’다.
“일제는 조선인은 수학이나 과학보다는 ‘실과’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과교육을 빙자하여 수업시간에도 텃밭을 가꾸게 했다. 조선인에게는 고등교육 기회를 주지 않은 반면,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긴 교육과정, 수학과 과학에 대한 충분한 강조, 실용성보다는 사유와 논리의 발달에 초점을 맞춘 커리큘럼을 제공하였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청년기 또한 길어졌다. 교육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교육은 복지이다. 그리고 어떤 복지보다 경제성장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모든 사람이 대학교육을 받는 것은 전혀 나쁜 게 아니다. 그것을 사회적 비용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_ 상이한 두 개의 논조가 하나의 글처럼 연이어 얽혀 있다. 그 사이에 강이 흐른다. 교육이 복지라면, 우선 공통 교육과정이고, 그 다음 심화 교육과정이며 그에 합당한 역량을 갖추었는지 묻는 것이 도리이다. 그래야 세 배분이 공정하다. 윗 문단은 아래 문단과 어긋난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건 환유의 오류랄까.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