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6th, 2017

February 26, 2017: 9:34 pm: bluemosesErudition

“클라리스 스탈링 탄 무스탕이 매사추세츠가에 있는 ATF(술, 담배, 총기국)의 정문 앞 경사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문선명 목사에게서 저렴한 가격에 임대를 받아 사용하는 건물이었다.”

: 4:49 pm: bluemosesErudition

“세상에 거하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은 세상의 질문을 유발하는 삶이다. 이것이 바로 선교적 삶이다.”

“‘창조주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가는 이야기’로 성경에 접근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점을 가장 설득력있게 밝힌 이는 영국의 구약학자 라이트(Christopher Wright)이다. 라이트는 이를 ‘하나님의 선교’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는 미션(mission)이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가 ‘목적’이 실현되어 가는 이야기로 이해할 것을 제안하였다. … 우리가 공동체 속에서 가장 시급하게 전파해야 할 것은 성경 이야기가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 즉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어 가는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먼저, 그 큰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작은 본문을 묵상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어떤 본문이든 그것이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 속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해석의 큰 틀을 잘못 설정하면, 작은 본문 자체의 의미를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 본문의 위치를 엉뚱한 데서 찾기 마련이다. 반대로, 작은 본문의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하는 묵상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에 붙잡혀 있는 한,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한 묵상이 가능하다. 나아가서, 성경 이야기가 실어 나르는 세계관적인 요소들을 강조하고 이에 반응하는 묵상 훈련이 필요하다. 묵상의 시작은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 속에 내가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내면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연히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결을 거슬러 가거나 조화되지 않는 나의 이야기는 내려놓는 진통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이야기 속에서 부름 받아 오늘 여기에서 내 몫의 이야기를 쓰려는 이러한 싸움을 우리는 ‘적용’이라고 부른다.”

: 4:25 pm: bluemosesErudition

“내가 사용하는 ‘상상력’이라는 단어는 우리 앞에 놓인 세계에 뿌리박지 않은 현실의 이미지들을 창조하고 말하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기정사실 밖에서, 당연시되는 상자 밖에서 작동한다. 폴 리쾨르(Paul Ricoeur)가 살폈듯, 예수의 비유들이야말로 그런 상상의 행위를 보여 주는 고전적 본보기다. 예수의 비유들을 보면 청중이 당연시하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그분이 생각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리쾨르는 그 비유들을 ‘한계 표현’(limit expressions)이라 부른다. 이는 낯익은 세계 바깥쪽으로 우리를 밀어내는 표현, 야웨와 청중 공동체 사이의 공간에 미지의 영토를 열어 주는 표현을 말한다. 이와 같은 전복적인 해방의 발언은, 계몽주의 합리성에 따라 예언서의 모든 내용에 ‘설명’을 달았던 우리의 비평 작업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월터 브루그만)

: 2:00 am: bluemosesErudition

팀 배정 직전의 업무분장 조율은, 무지의 베일에 덮인 원초적 입장과 유사하겠군. “롤스는 이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사회를 위해 선택하는 것이 정의의 원리로 간주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