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October, 2009

October 22, 2009: 7:25 pm: bluemosesErudition

“잃어버린 것은 나에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이다. 남은 것이라고는 빈자리를 확인시켜주는 상처뿐이다. 우리는 계속 전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계속 전진할 경우에도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상처를 그대로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_ Charles Frazier, Cold Mountain, 1997: 334.

* 전진의 선택: 1) 의도된 무관심, 2) 사명감 회복, 3) 7배의 집중 / 하나가 빠졌다. 0) 기도로 세운 뜻.

October 21, 2009: 11:32 pm: bluemosesErudition

The realization of justice : Construction of God’s righteousness through building his kingdom.

: 10:59 pm: bluemosesErudition

윤리는 사회의 정신이다. 때로는 의식이 존재를 압도하나, 대개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공의의 회복은 개인의 각성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의 동심원적 확장은 반드시 천국의 구축으로 실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각성은 수술 중 각성으로 패퇴하고 만다. 기억하자. 공의에서 천국이 발아하고, 천국에서 공의가 만개한다.

: 10:15 pm: bluemosesErudition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영혼의 공허함이 육신의 자존감을 침륜케 한다. 모든 것이 무너질지라도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며 강건히 견고하게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자. 나는 ‘오늘, 여기서, 주를 위해’ 산다. 혼신을 다해. 미숙한 자의 곤고한 다짐: 목표를 정할 것. 계획을 세울 것. 그리고 과업을 이룰 것. Beat myself? No! Comfort myself? Yes!

: 9:22 pm: bluemosesErudition

사랑이 그렇듯, 죄도 인격체이다. 교류하지 않으면 끊어낼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언제나 진행형이다. 결코 완료형일 수 없다. 사랑이 그렇듯.

October 19, 2009: 2:56 am: bluemosesErudition

내가 죽고 예수로 사는 비결은, 단 하나. “말씀의 육화”(요1:14)이다.

: 2:50 am: bluemosesErudition

“하나님의 뜻이 숨어있는 것은, 그분이 영원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시는 방식을 우리가 주어진 순간에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을 보시며 모든 측면을 지배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이야기 속에 들어가 그 내용이 서서히 전개되는 대로 경험하기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큰 그림의 작은 일부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은 확실히 믿을 수 있지만 그 방법을 언제나 아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분이 끝내 영광의 목적을 이루실 것을 믿으며 그분의 주권에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 2:33 am: bluemosesErudition

“사심 없는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에 들린 밀랍과 같아서 영원하신 뜻에 따라 어떤 모양으로든 빚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 마음은 개인적 취향을 모른다. 어느 길에든 똑같이 준비돼 있으며, 그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뿐이다. 그 마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을 원하시는 그분의 뜻에 이끌린다.” Francis de Sales, Finding God Wherever You Are, 126.

October 15, 2009: 11:20 pm: bluemosesErudition

“두 사람은 손을 겹쳐서 대성당을 그린다. 매우 기묘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다. 결국 … 화자 역시 맹인이 보는 방식으로 대성당을 보게 된다.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두 사람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 2:55 pm: bluemosesErudition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그러한지, 정체성을 자문하는 음성이 내면에서 울린다. 실로 오랜만이다. <몸으로 하는 공부>를 펼친다. “‘헤겔주의’라는 건 오히려 일종의 학문 방법론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분을 놓치지 않으면서 전체를 관망하는 방법, 모든 사태를 역사적 변화의 추이 속에서 성찰하는 태도, 결론을 유보한 채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해나가려는 각오 등이 그의 학문 방법론의 요체라 할 수 있겠고, 이것을 우리는 ‘변증법’이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