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une 23rd, 2014

June 23, 2014: 9:58 pm: bluemosesErudition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ricewaterhouseCoopers, PwC)는 영국 런던에 있는 매출액 기준 세계 1위의 다국적 회계 감사 기업이다. 2011년 회계연도 기준 전 세계 158개국에 771개의 사무실과 16만 9천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총 매출액은 290억 달러이다. 한국의 삼일회계법인이 이 회사와 제휴관계에 있다.”

: 3:46 pm: bluemosesErudition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한 경영난에 가동이 어려웠으나 삼성자동차의 조기 가동을 바라는 부산 시민들의 염원에 힘입어 원천 기술을 가진 닛산을 인수한 프랑스 르노에 매각되었다. … 2000년 르노가 지분 80.1%를 인수하여 르노삼성자동차로 사명을 변경했다. 삼성카드는 나머지 지분 19.9%를 갖고 있으며, 삼성 브랜드를 임차해 주는 대신에 영업이익이 발생할 경우 매출의 0.8%를 로열티로 받고 있다.”

: 3:27 pm: bluemosesErudition

ROM 8:37 ESV

No, in all these things we are more than conquerors through him who loved us.

: 11:30 am: bluemosesErudition

하지와 추분 사이의 첫 날

: 2:50 am: bluemosesErudition

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의 무리에 이른다.

정의는 지고하신 주를 움직이시어,

신의 권능과 최고의 지와

원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다.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1.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지옥문은 현실 세계에서 몇 단계 더 내려간 지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테가 길을 잃고 헤맨 숲의 저지대, 즉 지상에 있다는 묘사이다. 단테는 어두운 숲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베르질리오의 뒤를 좇는다. 그 앞에 지옥문이 있다. 지옥문은 현실 세계와 동일한 평면에 있다. … 지옥문이 지하가 아니라 이 세상, 숲을 벗어난 황량한 벌판에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단단히 새겨 두어야 한다.”(177)

2. ”중국고전이 서양에 소개된 초기 무렵에는 서양에 아직 responsibility라는 말이 없었고, 이 말은 19세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철학사전에 설명이 나오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에, 유교의 ‘義’를 justice로 번역했던 것이다. ‘의’란 ‘책임성’을 가리키는 말로 본래 주관적 책임성이며, 여기에 객관적 공평이 덧붙여질 때에만 ‘정의’가 되는 것이다. ‘의치(義齒)’는 정의의 이(齒)가 아니라 이에 기능적으로 응답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며, ‘신의(信義)’란 믿음의 정의가 아니라 신뢰에 응답하는 책임이며, ‘불의(不義)’란 부정이 아니라 책임을 지지 않는 배신이다.”(184)

3. “지옥은 인간의 원한이나 증오가 만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을 구원에 적절한 상태로 이끌어 갈 수 있을까를 고심한 삼위일체(신의 권능으로서 창조주인 아버지 신, 로고스로서 최고의 지知인 아들 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양자 사이에 오가는 사랑의 숨결로서의 원초적 사랑인 성령)의 사랑이 정의를 중히 여기게 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지옥은 정의를 소중히 여기는 신의 사랑의 소산이라는 것이 단테의 사상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185)

4. “단테는 이 9행으로 그때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지옥의 정의(定義)를 시적으로 표현했다. ‘지옥이란 일체의 바람, 희망이 없는 곳이다.’ 그러한 지옥이 우리의 지면과 같은 높이의 땅에 문을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지옥문 밖에 모든 희망을 남겨 두어야만 한다. 지옥이란 절망의 장소인 것이다.”(188)

5. “나로 인해 남이 좌절한 일은 없는가, 남에게 조금이라도 슬픔을 준 일은 없는가. 그것 자체가 남을 지옥에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일이다. 이 시는 우리에게 ‘지옥문이 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게다가 단테는 이 지상 어딘가에, 우리와 같은 지면 위에 지옥문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가리키는 말은 아닐까. 그 점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Per me는 ‘나를 통과하여’도 되지만, 또한 ‘나로 인하여’라고도 읽을 수 있다. 영어의 through와 마찬가지다. … ‘문(porta)’에 정관사가 아니라 부정관사를 붙였다. 요컨대, 문법적으로 생각하면 유일하게 그것 하나뿐인 문이기도 하지만, 어디에나 있는 불특정 다수의 문 중 하나로도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지목문이 될 가능성도 있다. 자기는 눈치 채지 못한 채, 지옥문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