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는 기하학을 통해 천체 궤도의 종류를 처음으로 알아낸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다. 그는 당시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 중 한 사람인 티코 브라헤의 제자였다. 티코 브라헤는 오랜 세월 동안 하늘을 관측해 행성 등의 위치를 기록해 두었는데, 죽기 바로 전 해인 1600년에 방대한 관측 자료를 정리하기 위해 궤도 계산에 뛰어난 케플러를 제자로 초대했다. 그리고 케플러뿐만 아니라 각각의 제자에게 행성을 하나씩 담당하게 했다. 케플러의 담당은 화성이었다.”
뉴턴은 약 80년 후 행성의 운동이 타원 형태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수학적으로 간명하게 증명하였다. “뉴턴은 대학을 갓 졸업한 1666년 24살 나이로 근대 미적분학, 중력이론과 천체역학, 광학 이론의 토대가 된 아이디어를 고안했고, 1672년에 근대 광학의 새 장을 연 논문을 발표하고, 1687년에는 불후의 명저 <프린키피아>를 저술했다. 이 책의 원제목은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이며 런던 왕립학회가 발간을 총괄해서 출판했다. 이 책이 출판된 과정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지구나 화성과 같은 행성이 태양 주위를 타원 운동을 한다는 것은 1609년에 천문학자 케플러가 밝혀낸 것으로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 가운데 첫 번째 법칙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케플러 이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과학자들은 왜 행성이 타원 운동을 하는지를 밝혀내지 못했고, 따라서 이 문제는 당대 과학자들에게 대표적인 미해결 난제(難題)로 남아있었다. 이 문제는 영국의 왕립학회 회원들 사이에서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왕립학회의 큐레이터를 하던 후크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을 받을 때 행성이 타원 운동을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증명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러던 와중에 1684년 8월 런던의 천문학자 핼리(E.Halley)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이 행성과 같은 물체에 작용할 때 행성의 궤도가 어떻게 되겠냐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케임브리지의 괴짜 수학자 뉴턴을 방문했다. 핼리의 질문을 받은 뉴턴은 즉각 그 물체가 타원 궤도를 그린다고 답하고 자신이 이미 그 결과를 오래 전에 계산해 놓았다고 말했다. 뉴턴은 당시에는 증명을 적어 놓은 원고를 찾지 못했지만, 핼리가 런던으로 돌아간 몇 달 뒤인 1684년 11월에 타원 궤도의 증명과 더불어 케플러의 2, 3법칙도 증명한 <물체의 궤도 운동에 관하여>(De motu corporum in gyrum)라는 논문을 핼리에게 보냈다. 이 논문의 독창성에 놀란 핼리는 뉴턴에게 역학과 천문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한 책을 집필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고, 왕립협회가 이 책의 출판을 담당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프린키피아>의 초판이 1687년에 나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