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에 기반을 둔 간명한 보수의 논리와 구별짓기에 여념 없는 번잡한 진보의 비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대중은 누구의 손을 들겠는가. 영화 <국제시장>의 흥행을, 몰지각한 대중의 어이 없는 쏠림 현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극히 우둔한 오만이다. 악의 평범성이나 자발적 복종 같은 언설이 얼마나 잔인한 오해인지, 사르트르 마냥 지사연하는 이들은 알지 못한다. 일상과 무관한 관념의 진정성 또한 그들을 고양하는 훈장이기에.
“논란은 진보 논객이라는 이들이 일으키고 과실은 보수가 따갔다. 그 ‘잘난 체’가 문제였다. (중략) 수많은 관객이 본 <국제시장>을 보수주의자, 산업화 세대의 영화라고 치부해버린다면 수많은 이를 진보에서 배제하는 꼴이 된다. 이념을 떠나 가족 관점에서 현대사를 바라보는 이들은 모두 보수주의자 또는 산업화 세대이거나 이 논리에 찬성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 고난 속 가족을 위한 분투는 보편적 가치다. <국제시장>은 산업화 세대의 논리를 넘어 개인의 분투라는 측면에서 보수의 논리를 일정하게 제한하면서 진보의 논리를 확장시킬 수 있는 영화였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제 개발이 잘 이루어진 것은 정권이나 기업 덕이 아니라 각 개인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라고 영화가 말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파독·파월 노동자에게 국가가 해준 것은 없었다.” “관객을 계도해야 할 무지의 군중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관점은 엘리트들의 소아병적 나르시시즘의 산물이다.”(김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