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누구랑 논쟁할 때 상대방을 완전히 이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우선 상대방의 주장을 최대한 선의로 해석합니다. 그다음 그 내용을 논파하면 됩니다.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상대는 재기불능 상태가 되죠. 상대방인 한 말 중에서 조그마한 실수를 가지고 딴죽을 걸거나 말꼬리 잡는 것은 어리석어요. 또는 상대방 주장의 약한 부분들이 여럿 있을 텐데 그것을 물고 늘어져 길게 비판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재반박의 기회를 주는 셈이거든요. …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상대방을 완전히 논파한다고 해도, 이겼다는 쾌감은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이 내 글에 설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 대부분의 글은 자기편의 신념을 강화할 뿐 상대편을 우리 쪽으로 개종시키지는 못합니다. 특히 적대감이 쌓인 진영에서 주고받는 논쟁적 글들은 결코 상대방을 설복시킬 수는 없습니다. 싸움에서 이길 수야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기는 것과 설복시키는 것은 다릅니다. 논쟁에서 이겨봐야 자신의 호승심好勝心만 채워주는 거지요. 상대방을 설복시키지 못한다면 그 논쟁은 목적을 못 이뤘다고도 할 수 있어요.”
_ 고종석, 고종석의 문장2, 알마, 2014, 409~410쪽.
“영적 깨달음과 지적 수준은 별개다.” 이것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십분 이해한다. 박학다식한 영적 소경이 적지 않다. 도킨스의 교조주의적 무신론이 한 예다. 그러나 영성과 지성을 무관한 것으로 오도하는 뉘앙스에 동의할 수 없다. 그리하면 또 다른 해악에 빠지고 만다. 영성의 병폐는 결손된 인격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건주의, 율법주의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