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에 출간된 <<종의 기원>>을 이런 절차를 거쳐 읽었다. 예전에는 그저 고전이라 읽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읽었다. 인간의 정치적 삶과 그것이 영위되는 공동체에 대한 40주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러한 것과 대비되는 자연적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고, 그러던 차에 새로운 번역본이 나왔던 것이다. 이처럼 고전은 특정 국면의 문제의식을 해명하기 위해 곧바로 참조할 수 있는 믿음직한 텍스트이다. 이번의 독서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인간의 정치적 삶은 생물학적 퓌시스와는 다른 차원과 영역에서 전개된다는 것, 그 삶은 노모스에 근거한 ‘의무’를 정초하는 과정 자체에서 의의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정평있는 표준도서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이다. 어쨌든 찰스 길리스피는 내가 어렴풋이 깨달은 것을 다음과 같이 집약한다: ”만약 우리가 세계를 기술하는 과학의 본성을 잘 분별하여, 그것이 서술적일 뿐이지 규범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과학과 종교 사이의 양자 택일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과학은 자연에 관한 것이지 의무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에 관한 것이다. 기독교는 인격에 관한 것, 인간의 인격과 신의 인격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생물학은 인간이라는 동물이 진화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이 진화의 소산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따위를 발견한 것은 아니다. 원리적으로 과학은 (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연 선택이란 이름 아래서 작동하는 무의미한 우연을 허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인간이란 자연적 존재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던 사람들 자신이었다.”
_ 강유원, 2015.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