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틀림 없는 경우만 언급한다.
교만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죄의식을 쌓는다. 죄의식의 장벽이 거대할수록 두려움 또한 커진다. 어떻게 이 장벽을 허물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 기초를 파괴하면 된다. 성서에서 한결 같이 일러주는 폭약이 있다. 바로 하나님 경외다.
거짓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길은 참 두려움에 거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불안에서 기인한다. 불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나 이미 중간지대의 불안이다. 자아의 초석을 상수(창조주)가 아닌 변수(피조물)로 삼기에 그러하다.
제 나름의 철학과 주관이 가능한가. 다시 말해 주체가 실재하는가. 그토록 사도들이 자기 부인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쩌면 나쓰메를 좌우 모두 칭송하는 까닭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겠다. 화혼양재를 위한 자기 본위의 여정, 그 명과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