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6th, 2016

January 6, 2016: 12:08 pm: bluemosesErudition

박치우는, 자주 하이데거로 대표되는 불안의 철학을 공박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획득된 시민계급이 산업사회가 빚어낸 소외와 위기(공황)의 극복을 시민계급 내부의 모순(빈부)과 경제 기구에서 찾지 않고, 정신이나 내면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불안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박치우는 이들에게 놓인 전망이라고는 슈펭글러와 같은 숙명론의 설파나 파시즘에의 투항밖에 없다면서 나치에 협력한 하이데거를 비판했다. 반면 하이데거로 졸업논문을 쓰기도 했던 박종홍은 나치에 협력했던 하이데거의 오류까지 따라하는 오욕의 길을 갔다.”

: 11:39 am: bluemosesErudition

그의 생애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참혹한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냉소가 한 인간을, 체제를, 세계를 파멸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 가련한 인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인간이라 불리는 이 쓰레기 더미들이란!” “나는 이제 체념을 배웠다. 인간이라는 사기꾼에 대한 끝없는 멸시를 배웠다.” “인간은 한 무더기의 오물이다.” 그의 일기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표현들은 괴벨스를 밀고 나간 근원적인 힘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사회에서 절망한 젊은이는 좌절하고 절망하고 분노를 키우다가 급기야는 인간에 대한 극도의 냉소를 갖게 된다. 그리고는 그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이 국가와 동일시되는 민족이라는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의 지도자에게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다. 괴벨스에 있어서나 그의 선동을 따라간 독일인들에 있어서나 열광의 뿌리는 뜻밖에도 좌절에서 번져 나온 냉소였다. 이러한 냉소와 열광의 기이한 합치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강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