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January 7th, 2016

January 7, 2016: 2:03 pm: bluemosesErudition

그가 독해의 지표로 삼은 것은 엔서(Ensor)가 1939년 영국 국립 국제관계연구소에서 행한 연설 중의 한마디다: “논리적 연관성이 없다고해서 그것이 곧 논리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레고어에 따르면 우리는 “히틀러의 글에서 19세기와 20세기의 여러 작가, 정치가, 철학자의 사상의 메아리를 힘들지 않게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메아리들은 언제나 공허하고 절반만 이해된 것”이다. 이는 히틀러의 독서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팸플릿이나 신문, 강연, 대화 등에서 간접적으로 지식”을 얻었으며, 책을 읽는다해도 “지식인의 열린 마음으로 … 읽지 않고, 자기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만 읽었다.” 그는 이렇게 대강 어설프게 읽은 것을 가슴 속에서 버무려 말로 뱉어냈으며, 그것을 받아쓰게 하여 <<나의 투쟁>>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의 투쟁>>은 1923년 히틀러가 ‘맥주집 반란’의 실패로 란츠베르크 형무소에 갇혀있던 기간에 구상되어 그가 서기에게 불러준 것이 1925년, 1926년에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출간되었다. <<나의 투쟁>>과 관련된 이 두 가지 사실, 즉 그 책의 집필 과정과 구상 및 출간 시점은 이 텍스트를 독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맥주집 반란은 실패한 거사였지만 요하힘 페스트의 지적처럼 “히틀러 자신과 그의 당 역사에도 … 하나의 전환점”이었으며, “현대 국체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정복한다는 것은 전망없는 일이며 권력장악은 헌법의 토대에서만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히틀러 평전>>) 그런데 히틀러는 이것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커쇼는 히틀러가 이때부터 “자신만이 독일의 위대한 지도자라 믿게” 되었으며, 동시에 “일부 당원들도 그를 나폴레옹과 비교하고, 독일의 무솔리니로 묘사”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나치당의 “히틀러 숭배의식”은 이 시기에 시작된 것이며, 이는 차츰 “히틀러의 공적인 이미지에 대한 능동적인 조작”과 “독일인들의 수용성”, 즉 “정치적 지도력에 대한 ‘초인’ 이미지를 받아들일 조건을 갖추고 있던 사회적-정치적 구조, 가치체계, 그리고 ‘심성구조’”가 결합된 히틀러 신화로 구축되기에 이른다. 그런 까닭에 <<나의 투쟁>>은 “극우파 사이에서 히틀러가 가장 역동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과격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극단주의자들의 영역에서 지도권을 차지하려는 그의 노력을 뒷받침하도록 의도된 것”이라 규정할 수 있다. <<나의 투쟁>> 두 번째 권이 출간된 1926년에 나치당은 ‘Heil Hitler’를 도입한다. 이로써 공적인 차원에서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로서의 그의 면모가 뚜렷해졌다.

_ 강유원, 2015. 12. 30.

: 12:26 pm: bluemosesErudition

In those days a decree went out from Caesar Augustus that all the world should be registered. This was the first registration when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And all went to be registered, each to his own town. And Joseph also went up from Galilee, from the town of Nazareth, to Judea, to the city of David, which is called Bethlehem, because he was of the house and lineage of David, to be registered with Mary, his betrothed, who was with child.(Luke 2:1-5 ESV)

: 11:31 am: bluemosesErudition

햇빛과 재채기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제자의 문답 내용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불에서 나오는 열은 재채기를 유발하지 않는데, 태양열은 재채기를 유발하냐는 제자의 질문에, 태양열은 콧속의 점성 물질을 연무처럼 분산시켜 재채기를 나오게 하지만, 불의 열은 콧물을 마르게 해 코를 간지럽혀질 일이 없고 그래서 재채기도 나지 않는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현대 과학자들이 확인한 사실이 맞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은 틀렸습니다. 재채기를 유발하는 건 태양열이 아니라 태양의 빛이니까요. 하지만 이 증상이 현대인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는 건 아리스토텔레서의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1950년대 프랑스의 세당(Sedan)이라는 이름의 안과 의사가 빛에 노출되면 재채기가 나오는 사람들의 증상에 대해 연구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의 환자들 가운데는 망막을 살펴보려고 검안경을 통해 눈에 빛을 비추면 꼭 재채기를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세당은 그런 환자들 여섯 명을 관찰한 결과, 이들이 실내에 있다가 햇빛이 내리쬐는 밖으로 나가거나 카메라 플래시를 보거나, 아니면 한 명은 자외선에 노출될 때도 어김없이 재채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재채기는 어두운 데 있다가 밝은 데로 나갔을 때, 즉 처음 빛에 노출됐을 때만 나오고 그 다음에는 햇빛에 얼마나 오래 있든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적었습니다. 세당은 이런 증상에 관한 연구가 있는지 기록을 뒤져봤지만 아무 것도 찾지 못했고, 자신이 관찰한 환자 여섯 명에게 나타나는 의문의 재채기 증상은 굉장히 희귀한 사례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얼마 뒤 1964년에 에버렛(H. C. Everett)이란 의사가 신경학지에 “광반사 재채기(photic sneeze reflex)”라는 이름을 붙여 이 사례를 보고했을 때만 해도 이런 현상은 여러 차례 보고되고 확인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연구진들의 추정치로는 전 세계 인구의 17~35%가 빛에 노출되면 재채기를 합니다. 에버렛이 한 실험만 봐도 실험 대상자의 23%에서 이 증상이 발견됐으니, 네 명 당 한 명 꼴인 셈입니다.

1991년 맨체스터 대학의 병리학자 벤보우(Emyr Benbow)는 영국 안과 의학지에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에는 “아주 사소한 질환, 증상이라도 이름을 붙이면 체계적인 연구로 이어지고 이를 치료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벤보우가 의미하는 증상은 바로 어두운 데 있다가 햇빛이 내리는 밖에 나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재채기가 나오는 “빛에 의한 재채기(photic sneezing)”였습니다. 벤보우는 주위를 살펴본 결과 이런 증상이 꼭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이 증상은 에취(ACHOO) 증후군이라고도 불립니다. 에취(ACHOO)는 “Autosomal Dominant Compelling Helio-opthalmic Outburst”의 약자를 따서 만든 말인데, 직접 풀어쓰면 “태양에 눈이 노출되면 터져나오는 상염색체 우성 유전자에 의한 증상” 쯤이 됩니다. 성염색체가 아닌 보통 염색체(상염색체) 가운데 존재하는 이 유전자는 우성이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에게만 있어도 자식에게 유전되고 발현될 수 있습니다.

: 11:20 am: bluemosesErudition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흔히 설사나 배의 통증, 발열 등을 동반하며, 심할 경우 배변에 피가 섞여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만성 질환은 전체 인구의 11퍼센트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치료제나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연구를 진행한 반더빌트(Vanderbilt) 대학 박사 과정생인 켈시 라드(Kelsey Laird)씨는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치료하기 힘든 질병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따라서, 심리치료를 모두 마친 이후에도 6-12개월간 효과가 지속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효과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얘기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