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th, 2016

December 20, 2016: 10:45 pm: bluemosesErudition

“지정학(geopolitics)은 지리적 요인들을 통해 국제적 현안을 이해하는 방식을 말한다. 여기에는 산맥 같은 천연의 장애물이나 하천망의 연결 같은 물리적 지형뿐 아니라 기후, 인구 통계, 문화 지역, 그리고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성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정치, 군사 전략부터 시작해서 언어, 교역, 종교 등을 포괄하는 인류의 사회적 발전에 이르기까지 우리 문명의 여러 국면에 중대한 충격을 가할 수도 있다.”(9)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남는다.”(10)

“1803년, 미합중국은 프랑스로부터 뉴올리언스가 있는 루이지애나 지역 전체의 지배권을 사들였다. 이 지역은 멕시코 만에서 시작해서 북서쪽으로 로키 산맥의 미시시피 강 지류들의 상류까지 뻗어 있다. 이 땅의 면적은 오늘날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그리고 통일 독일을 합친 넓이와 맞먹는다. 신생 미합중국은 이 땅을 흐르는 미시시피 강의 유역을 기반으로 번영으로 가는 길을 닦는다. 1천5백만 달러짜리 서명 하나로 1803년에 미국은 루이지애나를 구입하여 영토를 두 배로 늘렸다.”(63)

“대다수 미국인들은 1819년 [스페인에서] 플로리다를 얻은 것을 가장 큰 승리로 여겼지만 당시 국무장관인 존 퀸시 애덤스는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결정적으로 태평양 방향의 경계선을 획득한 것이 우리 역사에 위대한 시대를 열게 한다.”"(65)

“텍사스는 1845년 미합중국에 귀속되었고 1846년부터 2년간 벌어진 멕시코와의 전쟁에서는 미국과 힘을 합쳐 싸웠다.”(67)

“분석가들이 지난 10년에 대해 쓴 것을 보면 대다수가 21세기 중반에 이르면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며 세계의 최대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1장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살펴본 이유로 인해 나는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1세기는 걸릴 거라고 본다. … 경제로만 보면 중국은 미국에 견줄 만큼 성장했지만 군사력과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미국에 수십 년은 뒤처져 있다.”(76)

: 4:15 pm: bluemosesErudition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는 어떤 지역이나 공간의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삶을 지배하는 정신과 방향성을 의미하며 완성된 ‘왕국’(Kingdom)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삶의 양식’(Lifestyle)이다. 그것은 권력이나 폭력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가 지배하는 삶과 세계를 뜻한다.”

: 3:46 pm: bluemosesErudition

A History of the Christian Doctrine of Justification

: 3:36 pm: bluemosesErudition

Alister McGrath, T. F. Torrance: An Intellectual Biography(T&T Clark, 1999), reviewed.

: 11:59 am: bluemosesErudition

“토렌스의 생애 중 한 시기가 그에게 특별히 중요했는데,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처음에는 중동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탈리아에서 스코틀랜드 부대의 군목으로 일한 몇 년이었다. 그가 특별히 기억하는 부분은, 치명상을 입고 전장에 쓰러져 있던 한 젊은 군인이 그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토렌스가 할 수 있는 한 그를 도우려고 애쓰는 동안, 그는 토렌스에게 “하나님이 정말로 예수님과 같습니까?”라고 물었다. 토렌스는 그에게 그렇다고 확신시켜 주었고, 그 젊은이는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토렌스는 이 사건이 나사렛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확신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해주었다고 했다.(92~93) 하나님은 겉으로는 착한 척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본성을 알아차리지 않기를 바라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분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를 통해 만나는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그래서 토렌스의 통찰이 그토록 중요하다. 우리가 예수님의 얼굴을 통해 보는, 사랑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만들어 낸 환상도 아니고 누구가가 우리에게 부과한 속임수도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알려지도록 하나님을 온전히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성취이시다. 구약성경이 예수님을 예견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구약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 바르트 <교회교의학> 영역자이자 맥그래스 <과학적 신학>의 선구자, 토머스 토렌스(1913~2007)

: 11:57 am: bluemosesErudition

“젊은 시절 내가 기독교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인간이 죽는 몸과 죽지 않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상이었다. 나는 몸이 영혼의 집 같은 것이고, 일단 죽으면 영혼은 천국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혹은 왜 그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실제도 신조에는 그런 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되었을 때는 비물질적이고 영원하며, 잠시 인간의 육체에 죽을 때까지만 머물다 다른 곳으로 가 버리는 영혼을 믿을 이유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면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스콜라 학파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영혼 불멸설을 믿었다. 중세에는 ‘몸’과 ‘영혼’을 구분했다. 그리고 인간이 다른 동물이나 무생물과 다른 이유는 ‘영혼’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이해는 성경을 근거로 정당화되었는데, 신약성경이 일반적으로 ‘육체와 영혼’에 대해 말하고, 간혹 ‘몸, 혼, 영’을 말하기 때문이다. 아퀴나스 같은 중세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몸’을 인간의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부분을 일컫는 것이라고 이해했고, ‘영혼’은 인간의 육체 안에 단지 기거할 뿐인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영적인 실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성경의 진술들을 정말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는가? 20세기의 많은 학자가 비물질적인 영혼의 개념은 성경적이기보다 세속 그리스적 사상이라고 지적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간에 대한 관점은 하나의 실체, 즉 여러 가지 양상이 있으나 분리는 할 수 없는 ‘정신-육체의 통일체’다. 구약성경은 인간을 “육화된 영혼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으로 보았다(H. Wheeler Robinson). ‘영혼’은 다양한 성경의 용어들을 번역하는 데 사용되는 앵글로-색슨 단어인데, 그렇게 번역이 되는 성경의 용어들은 대체로 ‘생명의 기초’ 혹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경은 인간의 어떤 부분을 일컫는 데는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인간 존재의 양상으로 이해한다. 신약성경의 경우도 비슷하다. 바울이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롬 8:4)이라고 한 말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서로 다른 부분인 육체와 영혼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차원에만 머무는 것과 하나님과 연결되는 삶을 사는 것의 차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을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존재의 양상으로 생각하거나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능력이 우리에게 참 정체성을 부여해 주고, 그 정체성을 유지해 준다.”

_ 그릇된 체계로 조야한 사유를 얼마나 그윽히 하는가. 신념에 신조를 맞추는 우활한 소리를 얼마나 충실히 하는가.

: 11:40 am: bluemosesErudition

공포와 용기의 밑둥, 혐오(토머스 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