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론이란 무엇인가? 실재하는 것은 자아뿐이고 다른 모든 것은 자아의 관념이거나 현상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세상 전체가 되어버린 비대한 머리통이다. 사실 그런 비대한 자의식이 없다면 누구도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자의식의 괴물들이 만들어낸 저마다의 세계를 방문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소설에 대해 말할 때 우리의 머리통이 조금쯤 커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활자유랑자 금정연)
“유아론이란 무엇인가? 실재하는 것은 자아뿐이고 다른 모든 것은 자아의 관념이거나 현상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세상 전체가 되어버린 비대한 머리통이다. 사실 그런 비대한 자의식이 없다면 누구도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자의식의 괴물들이 만들어낸 저마다의 세계를 방문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소설에 대해 말할 때 우리의 머리통이 조금쯤 커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활자유랑자 금정연)
“사물들이란 달리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반드시 최선의 목적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코는 안경을 걸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안경을 쓰는 겁니다. 두 다리는 바지를 입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래서 우리는 바지를 입는 것이지요. 돌멩이는 다듬어져서 성을 쌓기 위해 그런 모양이 되었고, 그렇기에 영주님은 너무나 아름다운 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남작은 가장 훌륭한 곳에서 사셔야 하니까요. 돼지는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났으니 우리는 일 년 내내 돼지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말이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죠.” / 48쪽
“오, 팡글로스!” 캉디드가 소리쳤다. “이런 끔찍한 일을 당신은 예측하지 못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니 결국 나는 당신이 말씀하셨던 낙관주의를 포기할 수밖에 없군요.” “낙관주의가 뭔데요?” 카캄보가 말했다. “아아! 그건 나쁠 때도 모든 것이 최선이라고 우기는 광기야.” 캉디드가 말했다. 그는 흑인을 바라보며 펑펑 울면서 수리남에 발을 들여놓았다. / 135쪽
“그렇다면 친애하는 팡글로스 선생님, 선생님께서 교수형을 당할 때, 해부를 당할 때, 매질을 당할 때 그리고 갤리선에서 노를 저을 때, 그때도 여전히 모든 것은 최선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캉디드가 팡글로스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네.” 팡글로스가 대답했다. “왜냐하면 결국 나는 철학자니까 자기가 한 말을 부인하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고 라이프니츠가 틀린 말을 했을 리도 없으니까 말이야. 특히 예정된 조화는 ‘충만한 진공’과 ‘미세 물질’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개념이기 때문이라네” / 196쪽
“모든 사건들은 가능한 최선의 세상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네. 왜냐하면 결국, 만일 자네가 퀴네공드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발로 차이고 아름다운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만일 자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면, 만일 자네가 아메리카 대륙을 누비고 다니지 않았다면, 칼로 남작을 찌르지 않았다면, 엘도라도 낙원에서 끌고 온 양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여기서 이렇게 설탕에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 열매를 먹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야.”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캉디드가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 합니다.” / 207쪽
“외부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중추신경계나 위장관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화들은 분리돼 독립적으로 발생하기보다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오랫동안 모든 것을 프로그램하고 우리 감정과 행동을 조절한다고 생각했던 뇌와 별도로 식도부터 위, 소장, 대장으로 이어지는 소화기는 또 하나의 작은 뇌를 형성해 수많은 신경과 호르몬을 통해 자율 조절하며 필요하면 뇌와 대화한다. 1980년대 새로 만들어진 ‘뇌-장관축(brain-gut axis)’이란 단어는 중추신경계 내 감정ㆍ인지를 담당하는 부위와 위장관 내 감각, 운동 등 실제 기능을 나타내는 부위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시각, 후각 등 외부 자극이나 감정, 사고 등과 같은 중추신경계에서 생기는 변화들은 위장관의 감각, 운동, 염증, 분비 등과 같은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위장관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자극들도 중추신경계의 통증 인지, 기분이나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 스트레스로 인지하기 전부터 내 몸의 위와 대장이 먼저 스트레스의 리트머스처럼 우리에게 뭔가가 필요하다고 경고하는 것이다.”
1842년 1월 25일에 쓴 글에서 조지 뮬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주 안의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글을 읽으면서 ‘고아원 운영 기금이 거의 다 바닥이 나고 함께 일하는 사역원들마저도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고아들에게 줄 것이 전혀 없는 가운데 식사시간이 되었다면, 고아들에게 줄 음식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있었는가’하며 우리를 무모하다고 나무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몹시 악하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울 때를 대비하여 미리 떼어놓은 것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이상 의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죄성은 우리 마음을 사로잡아 조그마한 여유가 생겨도 주님을 찾지 않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비록 모든 면에서 온전하지는 못할지라도 죄악 중에 사는 것만은 피하게 되므로 이런 일까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여러분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매우 소중히 여길 것이므로, 여러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모쪼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끊임없이 붙잡아 주시도록 구하기 바란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장랑한다 할지라도 시험이 닥쳐올 때 믿음이 적거나 죄악된 생활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먹칠을 하는 행위는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Ken Loach, Bread and Roses, 2000
“<빵과 장미>를 도식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는 건 무엇보다 켄 로치의 세계관이다. 그는 분명 비타협적인 원칙주의자이지만 관념적인 과격함이 없다. 일거에 승리하기를 바라는 욕심이 없다. 이 영화에서 청소부들은 임금인상을 쟁취하지만, 마야는 멕시코로 추방된다. 그래도 마야는 자존심과 명분을 얻고 간다. 자존심과 명분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켄 로치가 말하는 희망은 거기까지다.”
Ken Loach, It’s a Free World, 2007
“여주인공 앤지도 영화에서 그들을 착취하다가도 집으로 불러 따뜻한 빵과 수프를 대접한다. 고용주의 이런 면까지 모두 보여주면서 착취 논리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Ken Loach, The Navigators, 2001
“켄 로치가 감독한 <인부들>은 민영화로 인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철도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다룬 영화다. 대처 이후의 세기말적 우울이 전면에 흐르는 가운데, 영화는 시장논리가 어떻게 노동자들을 점차 신자유주의의 공모자로 만들어 가는지, 어떻게 그들의 평범했던 일상, 곧 자존심, 활기찬 유머, 동료애, 나아가서 가정과 직장공동체를 서서히 파괴하는지를 잔인할 정도로 덤덤히 보여준다. 생계의 위협 앞에서 동료의 죽음마저 외면하는 주인공들에게 죄의식이 주는 반성적 사유가 들어설 여지는 없다. 피해자마저 가해자로 내몰고 가해자의 죄의식을 제도적으로 면제해 주는 것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해악일지 모른다. 어느새 가해의 자리에 서게 된 이들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잡으면서 영화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