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30th, 2016

December 30, 2016: 10:37 pm: bluemosesErudition

드래곤 사쿠라(국역본: 최강입시전설 꼴찌, 동경대 가다) 1권, “넓게, 얕게, 확실히”

: 9:36 pm: bluemosesErudition

“시베리아 철도의 건설은 영국이 해군력으로 유지해 온 유럽 열강 간의 주도권을 흔들 뿐 아니라 인도의 영국 통치에 불안을 주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영러항쟁을 격화시켜 아시아의 기존 권익과 세력지도를 고쳐 쓴다는 의미에서도 국제 정치정세에 큰 충격을 준 것이다.” “다만 시베리아 철도가 완성되어도 실은 그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패권이 곧바로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베리아 철도의 종점인 군항 블라디보스토크가 겨울철에는 얼어붙어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러일전쟁 때까지 러시아 함대는 나가사키항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 난제를 해결하려면 시베리아 철도의 연장선상에 겨울철에도 사용할 수 있는 부동항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목된 것이 조선반도와 랴오둥 반도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시베리아 철도의 착공은 장래에 남하는 지선의 부설과 부동항의 확보를 필연적으로 예기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현실에서도 동청철도와 그 남하선(후에 남만주철도)을 부설하고 청일전쟁 후의 3국 간섭에 따라 일본이 랴오둥반도를 환부하게 했으며, 더 나아가 러시아 자신이 그것을 조차한다는 과정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65~66쪽)

: 8:30 pm: bluemosesErudition

“여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이 있다. 그들이 인구변화를 겪을 당시 우리나라와 중국, 대만 등 이웃국가는 젊었다.” _ 조영태, 정해진 미래, 북스톤, 2016, 217쪽.

: 4:34 pm: bluemosesErudition

‘모두들 이용하려만 들었지, 결정적인 순간에 돕는 이가 없다.’

: 2:16 pm: bluemosesErudition

대학 시절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통해 발터 벤야민을 처음 접했다.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항상 복제가 가능했다. 그러나 “가장 완벽한 복제에서도 한 가지만은 빠져 있다. 그것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이다.” 이 구절은 내가 문학 전공자로부터 연극 전공자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그림, 사진, 음악, 영화 등 대부분의 예술이 복제 가능하고, 애초부터 무한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의 발전 속에서 연극은 여전히 ‘지금, 여기서’ 일회적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연극은 어제의 공연과 오늘의 공연이 다르고 낮공연과 밤공연도 다르다. 영화배우는 카메라를 향해 연기하지만 연극배우는 관객을 향해 연기한다. 영화배우의 연기는 카메라 앞에서 여러 번 연기된 후 다시 기계적으로 편집되지만 연극배우의 연기는 관객들의 반응과 순간순간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매번 일회적인 것이 된다. 발터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연극은 ‘전시 가치’보다는 ‘제의 가치’, 즉 예배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혹자들은 대량 복제의 시대에 연극이 사양길로 접어든 예술이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이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아우라를 상실해가는 시대에 연극이 지니고 있는 원시적, 제의적, 수공예적 가치는 오히려 연극을 영속시키는 생명력임을 확신한다. _ 김미도 연극평론가